함양 구경  咸陽九景


1.지리산벽송사: 마천면 지리산 벽송사, *천왕봉, 벽소령, 영원사, 청매대사부도, 상무주암, 마천마애여래입상, 금대암, 안국사, 행호조사부도, 백무동百巫洞(한국무당의 발상지, 엄천사 법우화상과 천왕봉 여신과의 사이에서 퍼진 8도 무당들의 순례지, 변강쇠 나무하다 낮잠 잔 곳), 칠선계곡(한국삼대계곡), 벽송사, 서암, 경암대사부도, 등구사지(일두탁영유숙처, 변강쇠전의 고향), 군자사지, 지리산자연휴양림, 변강쇠가판소리문학공원(계획)

휴천면 엄천강, 엄천사지, 점필재차밭, 용유담, 와룡대

2.인산초당(계획): 휴천면 월평리 죽염골 인산초당(인산선생은거처), *오도재, 지리산제일문, 구룡폭포, 낙성대(인산선생취와건곤처), 인산의학죽염도시(인산선생죽염실험지, 구 월평분교), 지리산문학관(2009.06 개관), 월평저수지, 선유담(저수지 아래 골짝), 지안재, 삼봉산

3.대관림: 함양읍 상림, *척화비, 동학혁명발발의 원인제공자 조병갑함양군수선정비, 함양역사인물공원, 고운최치원선생신도비, 고운 최치원 역사공원(2014.03.착공), 백연서원지, 물레방아민속촌, 물레방아축제, 함양죽염축제인산가곡제, 뇌계공원, 뇌계가묘

병곡면 대봉산자연휴양림

4.월명총: 함양읍 백천리(신라시대 월명 아가씨의 연애담, 조선시대 기우제 성지, 만덕총, 사근산성, 사근역, 사근도찰방선정비)

5.남계서원: 일두고택, 승안사지, 문헌공묘; 지곡면 일두선생종가(정병호가옥), *만귀정, 종암, 신고당(옥계고택), 옥계시조공원, 수동면 남계서원(한국제이서원), *일두선생묘소, 춘수정, 구충각, 하동정씨고가, 청계서원, 구천서원, 일로당, 구졸암

6.연암실학촌(계획): 안의면 하풍죽로당, 연상각, 백척오동각, 공작관, 관자오륙동자육칠당, 죽리관, *연암사적비, 안의동헌질청(법인사), 광풍루, 제월당, 오리숲, 허삼둘가옥, 함양연암실학연구원(계획)

7.농월정: 안의면 화림동 월연암 농월정, *남명선생유람시

서하면 차일암 동호정, 용유담, 군자대 군자정, 거연정, 관운정

서상면 모은정, 노천동춘당유적시각, 황석산성, 여류충신논개묘소, 산삼자연휴양림

8.용추폭포: 안의면 심진동 용추폭포, *연암물레방아공원, 덕유산장수사조계문, 심원정, 매바위, 무학대사 은신암, 용추국제자연예술제, 용추자연휴양림

9.덕유산영각사: 서상면 남덕유산, 덕유교육원, 남령, 영각사, 설파대사 화엄각, 선문구산(禪門九山)성주산문(聖住山門)제이조사(第二祖師)심광대사(深光大師)영각사(靈覺寺)창건사적비(創建事蹟碑)(계획), 한국교정성지함양육십령산적영재교화신라향가우적가문학공원(계획)

 

                      함양 구경   咸陽九景

번역시인 중악산인 김윤숭(金侖嵩) 자작자역

 

함양산수고금청 咸陽山水古今淸   함양의 산수는 예나 이제나 맑고

일두유풍화속정 一蠹遺風化俗情   일두의 유풍은 민심을 교화했네

좌영우천천정계 左永右天天定界   좌안동 우함양 하늘이 정한 경계

공음구경선지정 恭吟九景選之精   구경을 읊으니 정선한 것이라네

 

역주: 영가(永嘉)는 안동의 고호로 용만(龍巒) 권기(權紀)가 1608년에 지은 영가지(永嘉誌)가 있고, 함양의 고호는 천령(天嶺), 속함(速含), 함성(含城), 함양(含陽), 허주(許州)로 춘수당(春睡堂) 정수민(鄭秀民)이 1657년에 지은 천령지(天嶺誌)가 있다. 함양역사관이 선정한 함양구경은 지리산벽송사, 인산초당, 대관림, 월명총, 남계서원, 연암실학촌, 농월정, 용추폭포, 덕유산영각사이다.

 

제1경               지리산 벽송사   智異山碧松寺

 

천왕봉하벽송당 天王峰下碧松堂   지리산 천왕봉 아래의 벽송당에서

경성부용벽안광 慶聖芙蓉闢眼光   경성당과 부용당의 눈빛이 열렸지

억석배친유차사 憶昔陪親遊此寺   옛날 선친을 모시고 여기 놀러왔을 때

대의의세비선황 大醫醫世比禪皇   대의사가 세상고침을 부처에 비유했지

 

제2경               인산초당   仁山草堂

 

지산심곡행화정 智山深谷杏花亭   지리산 깊은 골짝에 행정마을 있는데

정유행단임행청 庭有杏壇林杏靑   뜰에는 행단이 있고 행림이 푸르구나

은자훈몽고목기 隱者訓蒙刳木器   은자는 동몽을 가르치고 함지박 파며

일구단약야관성 日究丹藥夜觀星   날마다 단약 연구, 밤에 별 관찰하네

 

인산초당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 죽염골 살구징이 행정마을 인산선생은거처, 삼남출생지, 한방암치료제 오핵단(五核丹) 연구지, 죽염실험지,  인산선생부인묘소, 인산의학죽염도시

 

제3경              대관림   大館林

 

수림도시내함양 藪林都市乃咸陽   숲의 도시 경상남도의 함양군

천령현후학사향 天嶺賢侯學士鄕   천령군태수 고운 학사의 고장

점필연암음영처 佔畢燕巖吟詠處   점필재와 연암이 음영하던 곳

시민축제매년창 市民祝祭每年昌   시민의 축제 해마다 창성하네

 

역주: 천연기념물 명칭을 함양상림에서 대관림으로 개정하고 대관림을 확장하여 필봉산까지, 하림까지 연장하고, 옛 함양읍성 성벽터를 따라 숲을 만들고 거리를 조림하여 숲의 도시 함양으로 조성하고, 함양군청과 함양초등학교를 이전하고, 함양 동헌과 객사를 복원하고, 객관에서 대관림까지 숲을 연결하고, 대관림을 함양의 상징으로 강화하여 대표브랜드로 명품화하고, 천령문화제의 전통을 이어 대관림축제를 함양의 대표축제로 육성하고, 고운 최치원과 점필재 김종직 및 연암 박지원과 아정 이덕무 등 함양군수, 안의현감, 사근도찰방을 망라한 함양의 위인 목민관을 대관림의 표상으로 기념한다. 대관림을 중심으로 생태환경, 역사문화, 휴양관광, 숲의 도시 함양을 건설한다.

 

제4경               월명총   月明塚

 

월명지야과명촌 月明之夜過明村   달밝은 밤에 월명마을을 지나가니

순애시가역녀번 殉愛詩歌驛女墦   순애보 시와 노래 사근역녀의 무덤

수절동분유희열 守節同墳幽喜悅   수절하고 한 무덤 그윽이 기쁘리니

월명총상위명혼 月明塚上慰明魂   월명총에서 월명의 혼을 위로하네

 

역주: 월명총(月明冢) 수지봉 위에 있다. 전설에는, “옛날에 동경의 장사꾼이 사근역 계집 월명을 사랑하여 며칠 동안을 머물다가 갔다. 월명이 사모하다가 병이 되어 죽었으므로 여기에다 묻었다. 그 뒤에 장사꾼이 그 무덤에 가서 곡하다가 또한 죽어서 마침내 같은 무덤에 묻혔다.” 한다. 『신증』 김종직의 시에, “무덤 위에는 연리지(連理枝) 푸르구나. 길손이 그를 위해 화산기(華山畿)를 부른다. 지금도 달 없으면 여우가 우는데, 꽃다운 넋은 나비되어 날고 있겠지.”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 뢰계(㵢溪)  유호인(兪好仁, 1445~1494),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 1553~1623), 낙하생(洛下生) 이학규(李學逵, 1770∼1835, 嶺南樂府)는 月明塚을 읊었고, 태촌은 또 월명총과 대비되는 다혼녀 萬德塚을 읊었다. 죽하(竹下) 김익(金熤, 1723~1790, 1770 沙斤 察訪)은 月明斜 二首를, 졸암(拙菴) 서대순(徐玳淳, 1810∼1889), 화헌(華軒) 서인순(徐璘淳, 1827~1898, 天嶺樂府二十首), 심정(心亭) 서상두(徐相斗, 1854~1907)은 月明山을 읊었고, 화촌은 또 月明山歌를 읊었다. 추범(秋帆) 권도용(權道溶, 1877. 2.10~1963.10. 3)은 天嶺樂府五十首에 월명총을 소재로 遠望苦를 읊었다.

 

제5경              남계서원   灆溪書院

 

개평고택출명현 介坪古宅出名賢   개평의 고택에서 명현이 났는데

건원람계향만년 建院灆溪享萬年   남계에 서원 세워 만년 제향하네

유배종성종반장 流配鍾城終返葬   종성에 유배되어 끝내 반장하니

승안사역착신천 昇安寺域鑿新阡   승안사 구역에 새 무덤길 뚫었네

 

제6경               연암실학촌   燕巖實學村

 

북학열하유기성 北學熱河遊記成   북학파의 고전 열하일기 완성에

혁신사상괄인정 革新思想刮人睛   혁신사상이 사람들 안목을 새롭게 했네

하풍죽로제당추 荷風竹露諸堂甃   하풍죽로당 등 네 칸의 벽돌 건축

이용후생안의명 利用厚生安義名   이용후생의 실학 안의현이 유명하였네

 

역주: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안의현감, 1791~1796)이 안의현감에 부임하여 청나라에서 배운 벽돌 기술로 百尺梧桐閣, 烟湘閣, 荷風竹露堂, 孔雀舘 등의 건물을 지어 사용하였는데 1백여 년이 지나도록 찬연히 보존되다가 허물어졌고 1914년에 안의군이 폐지되면서 안의초등학교가 들어서 거기에 있던 관아 건물이 모두 사라졌다. 연암의 실학 정신을 기리고 실학적 건축물을 복원하여 연암연구 기지 겸 문화관광 자료로 활용하기 위하여 안의초교를 이건하고 옛 터전에 위 네 동의 벽돌건축물을 복원하여 연암실학촌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제7경              농월정   弄月亭

 

안음삼동팔정아 安陰三洞八亭峨   안의삼동에는 여덟 정자 우뚝 솟고

백석월연농월파 白石月淵弄月波   흰돌, 달 못은 달빛 물결 희롱하네

지족남명음영처 知足南冥吟詠處   지족당과 남명이 시를 읊조리던 곳

인산장구채광다 仁山杖屨彩光多   인산이 소요하니 광채로움이 많네

 

역주: 농월정(弄月亭)은 안의면 월림리 월연암(月淵巖) 위에 서 있던 팔작 지붕의 정자로 2003년 10월 방화로 소실되었다. 농월정 앞 바위에 지족당이 지팡이를 짚고 거닐던 곳’이란 뜻의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구之所) 7자가 새겨져 있다.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 1571~1639)가 67세 때인 1637년 9월 농월정을 세웠다. 이보다 앞서 7월에 호조참판으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 정자를 지어 자연을 벗삼아 평생을 보내고자 한 것이다.

남명 66세(1566) 3월에 옥계 노진 댁(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을 거쳐 갈천 임훈 댁(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을 예방하고 함께 안의 삼동(원학동,장수동(심진동),옥산동(화림동)) 유람하고 절구 유안음옥산동 3수를 짓다. 옥계 노진, 개암 강익, 각재 하항, 대소헌 조종도, 영무성재 하응도, 조계 유종지, 모촌 이정이 수행하다.

 

제8경               용추폭포   龍湫瀑布

 

장수사룡심은추 長水寺龍深隱湫   장수사의 용이 깊이 용추에 숨어

토운토옥계춘추 吐雲吐玉繼春秋   구름과 옥을 봄 가을로 토해내네

두어방식천류상 蠹魚放殖泉流上   일두어를 상류에 방류한 일두선생

족식혜민군자유 足食惠民君子遊   식량 증식 백성 혜택 군자의 여행

 

제9경              덕유산 영각사   德裕山靈覺寺

 

성주산문이세종 聖住山門二世宗   무염국사 성주산문의 이세 종조

심광영악타선종 心光靈岳打禪鐘   심광대사는 영각산에서 선을 폈네

설파송각화엄판 雪坡誦刻華嚴板   설파는 화경경을 외어 새겼는데

경훼당존벽화룡 經燬堂存壁畵龍   경판은 불타고 용그림 판당만 있네

 

   贈惺岸禪師                    성안선사에게 주다

   師在方丈山碧松菴      스님은 방장산 벽송암에 있다

 

                                                능호 이인상           번역시인 중악산인 김윤숭(金侖嵩) 역시

 

余愛岸師高   나는 스님의 고상함을 사랑하니

由樸入脫解   소박함에서 해탈에 이르렀네

冷官呼不至   고을 수령이 불러도 오지 않고

難經讀便罷   어려운 불경을 읽고야 마는구나

過余寒竹館   나의 한죽관으로 방문하여

抗言在義禮   의리와 예의에 대해 얘기하네

移阡營父葬   부친의 묘자리 옮겨 안장하고

訟官爲門弟   동생을 위해 관아에 송사하네

出家篤人倫   출가했어도 인륜에 도타우니

中心誠愷悌   속마음은 참으로 단아하다네

無以儒釋分   유가든 불가든 분간하지 아니하고

贈詩戒衰世   시를 주어 쇠퇴한 세상을 경계하네

 

   渭城 長林 五十員 耆老會韻

 

                                                        蓮峯 林炳洪

 

老去人生可樂天   늙으막 인생에서 천분을 즐길지니

吾鄕壽域好山川   우리 고장은 장수 고을 좋은 산천

正値黃梅新霽雨   5월달 새로 비개인 날을 만났으니

聊將白髮惜餘年   백발일지라도 여생을 애석해 하세

渭月千秋來呂叟   위천의 달 천추에 강태공을 비추고

林風十里憶崔仙   숲 바람 십리에 최고운을 추억하네

伊今更擬西都事   지금 다시 서도태수의 풍류을 본따

願得壺觴日日連   술병을 얻어 날마다 술 마셨으며는

 

한정록 제5권    

유흥(遊興)

전 문희(錢文僖 문희는 전유연(錢惟演)의 시호)가 서도(西都)의 태수로 있을 때 사희심(謝希深)과 구양영숙(歐陽永叔 영숙은 구양수(歐陽修)의 자)이 함께 있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숭산(嵩山)을 유람하고 영양(穎陽)을 거쳐 돌아오다가 저물녘에 용문(龍門)의 향산(香山)에 닿았다. 조금 있자 눈이 내렸으므로 두 사람은 석루(石樓)에 올라 도성(都城)을 바라보았는데, 각기 품은 회포가 있었다. 그때 갑자기 연애(煙靄)가 자욱한 속으로 이수(伊水)를 건너 달려오는 거마(車馬)가 있었다. 도착하고 보니, 전문희가 보내는 음식과 기생이었다. 와서는 전공(錢公)의 말을 전하기를,

“산 유람이 참으로 아름다웠지요. 빨리 돌아오지 말고 잠시 용문에 머물면서 눈 경치나 구경하시오.”

하였다. 그의 활달한 마음과 인재를 사랑하는 아량이 이와 같았다.

 

   蘫溪書院 咸陽

 

                                                        퇴계 이황

 

堂堂天嶺鄭公鄕   당당한 천령 고을 정선생의 고장

百世風傳永慕芳   백세 청풍 전하니 길이 사모하네

廟院尊崇眞不忝   서원에서 존숭함은 참으로 알맞으니

豈無豪傑應文王   어찌 문왕에 호응하는 호걸이 없으리

 

   到靈覺寺                     영각사에 이르러

 

                                                    저촌 심육

 

難如蜀道解凋顔   촉도보다 더 험한 길 넘어

爲借禪樓半日閑   절의 누각에서 반나절 쉬네

忽聽風塵多少語   속세의 말소리 갑자기 들려오니

還敎寶界落人間   정토세계가 인간세계로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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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구경  咸陽九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