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천사는 한국 무당의 성지
용유담, 백무당, 성모사는 무당 삼대성지
-법우화상(法祐和尙)-
무당이 굿을 할 때 한 손에 금방울을 흔들고 한 손에 채색 부채를 들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고 너울너울 춤추며 부처님 이름을 부르고 또한 법우화상을 부른다. 이것은 대개 유래가 있다.
지리산의 엄천사(嚴川寺)에 법우화상이 있었는데 매우 도가 높았다. 어느날 한가로이 있을 때 갑자기 보니 산골짝의 냇물이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불어났다. 그 근원을 찾다가 천왕봉 꼭대기에 이르러 키크고 힘센 한 여인을 보았다. 스스로 말하기를, "성모천왕(聖母天王)으로서 <성모천왕은 곧 지리산신이다. 고려 때 박전지(朴全之)가 지은 용암사(龍巖寺) 중창기에 보인다.> 인간계에 귀양 내려왔는데 그대와 인연이 있어 마침 물로 도술을 부려 스스로 중매한 것이다." 고 하였다.
드디어 부부가 되어 집을 짓고 살았다. 딸 8명을 낳아 자손이 번성하였고, 무술(巫術)을 가르쳤다. <지금 산 아래에 백무촌(百巫村)이 있다고 한다.> 금방울을 흔들고 채색 부채로 춤추며 아미타불을 부르고 법우화상을 부르면서 동네방네를 다니며 무업(巫業)을 일삼았다. 그러므로 세상의 큰 무당은 반드시 한 번 지리산 꼭대기에 이르러 성모천왕에게 기도하여 접신(接神)한다고 한다.《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제15장》이능화(李能和 1869~1944) 지음.
*백무촌은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으로 현재는 백무동(白霧洞 또는 百武洞)이라 표기한다. 고전 판소리 전집의 변강쇠가에 보이는 변강쇠가 나무한 백모촌(百母村)이 바로 이곳이다. 변강쇠가는 함양을 배경으로 하는 고전판소리문학이다.
통일신라 무열왕때 실존 인물이라는 설이 있는 마적도사가 마적사를 창건하였다 하니
*息山先生別集卷之三
地行錄[七]
智異古事
天王峰。有上中下三㙜。有滛祠。其神曰聖母。緇流謂釋迦母摩耶夫人。佔畢齋辨其妄焉。每春秋。四方祈禳者雲集。巫母擧幢幡跳梁呼號。日費千百。晉陽天嶺二官。定差直。月稅乾糗鍮銅器以資用。翰音仍放之山谷間。時有山雞成羣。
佔畢齋集卷之七 |
詩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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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母廟前嵐氣熏。瑤漿三奠雨紛紛。回頭更向山椒望。猿鶴松杉盡白雲。
前峯已失後峯靑。屛翳撩人不解晴。誰畫遨頭一蓑笠。滿村風雨看苗生。
秋江先生文集卷之六 |
雜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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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未九月二十七日癸亥。發晉州餘沙等村。赴斷俗寺。
抵義神庵。庵之西面。盡爲脩竹。杮木雜生竹間。紅實透日。舂廬溷室。亦在竹間。近日所見佳境無此比。殿內。有金佛一軀。西側室。有僧像一軀。余問此何人。僧曰。此義神祖師也。到此修道。道旣半。此山天王勸祖師移住他所。自爲鷦鷯鳥引路。師隨之。及一大岾。化爲鵰。至今名其岾曰鷦鷯鵰云。鵰又引路。至下無住基。師曰。此地幾日成道。鵰曰。三七日。師遲之。師又至中無住基。師曰。此地幾日成道。鵰曰。一七日。師又遲之。鵰又至上無住基。不能入。曰。此地可一日成道。非女人所得入。師自入擇地。結幕精盡。改名曰無住祖師。其言甚厖。余於庵前攤飯。穿竹林中涉三大川。登內堂岾。北視鷦鷯鵰岾。南下草莽中行三十里。抵七佛寺。寺本名雲上院。新羅眞平王朝。有沙飧金恭永之子名玉寶高者。荷琴入智異山雲上院。以琴修心五十餘年。作曲三十調。日日彈之。景德王於街亭。翫月賞花。忽聞琴聲。王問樂師安長一名曰聞福。請長一名曰見福者曰。此何聲。二人曰。此非人間所聞。乃玉寶仙人彈琴聲也。王齋戒七日。玉寶至王前奏曲三十調。王大喜。使安長,請長習之。傳於樂府。更於所居寺。設大伽藍。三十七國。皆宗此寺爲願堂。有泂首坐者稍解禪法。爲山中衲子師者爲余云云
靑溪集卷之四 |
[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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頭流之遊。再也。昔庚申春。省親于昇州鈴閣。將還。由鳳城循江流以下。入花開洞。歷賞雙溪靑鶴洞曁神興擬神而止。後乙丑秋。與申上舍深遠輩。由雲城繞荒山而轉。宿百丈寺。目探外面水石。直上天王峯▣▣神坐高臺等處。又庚辰秋。與孤潭▣▣。從燕谷▣▣▣▣▣▣▣▣▣▣▣▣▣▣▣▣▣▣▣▣▣▣▣▣▣▣▣▣▣▣▣▣▣▣▣▣▣▣▣▣▣▣▣▣▣▣▣▣▣春花秋葉。魂未嘗不往來于其間。何哉。豈以其雄呑溟海。建摽天地。羣仙所居。龍象所會者歟。適丙戉秋。春澗吳君勲仲名積
抵頭毛潭。一行皆缷馬以憩。雄潭綠淨。深不可測。石勢參差。恠不可狀。石之窪者爲臼。䧟者爲釜。潭之得名以此。而臼之深者或無底。釜之大者或容輪。豈神龍藏珠穴。玉女洗頭盆耶。吾三人鼎坐潭邊。厭觀之。因亂酌數巡而罷。日暮入君子寺。寺在頭流最深處。而平衍坦蕩。無攀援登陟之苦。東西投跡。恣意所如。余昔遊楓嶽。身登小人串。幽深峻險。詰屈廻曲。一步之頃。汗流至踵。其君子之可親。而小人之不可近也如此。兩箇老僧出迎門外。陰廊半頹。佛殿寥落。殊非昔日之君子寺也。余恠而訊之。有僧蹙頞曰。遊人織路。官役如山。僧安得不殘。寺焉能依舊哉。因屈指數其官役之所侵。而備述其所以焉。春澗曰。汝毒之乎。吾將吿于莅事者。而减汝役。可乎。僧扣頭不已。噫。苛政所及至此耶。山間乞食之流。與編列同科。則剝膚之苦。雖禽獸不得免矣。咨嗟良久。遂會食法堂。夕宿圓通殿。懸燈夜話。初五日丙申陰。早起促飯。將向龍遊潭。梁光祖拂曉而到。無他禮數。以笑相迎。每一言發。坐皆絶倒。此亦一勝友也。薄晩載琴歌鳴邃而行。有一厖眉僧願先導。因與之俱。遂出門。沿溪行十餘里。水益淸。石益瘦。霜林着岸。松檜夾路。騎驢行色。宛若畫圖間也。放轡徐行。不厭遲遲。旣到潭邊。余先下馬。心驚魂悸。可遠觀而不可近也。春澗顧余曰。偉哉。造物者爲此弄也。雖使韓昌黎李謫仙置此中。必袖手旁觀。喑無一語。况吾輩乎。不如勿吟詩。姑與之飮酒可也。於是絃歌交奏。酒籌無數。極歎而罷。春澗不禁技癢。得一詩。如靈恠千年跡。蒼崖有裂痕之句。雖古人亦難到。豈非善形容耶。還到君子寺。日已曛黒。有童奴自天嶺南村。負紅柹及餅笥來。足以爲明日登上峯㸃心資爾。初六日丁酉。或陰或晴。夜半張燈起坐。理登山行李。只芒鞋竹杖布行纒而已。天未明。出門騎馬。由義村直入初程洞。登上峯者。必由是途焉。入洞未數里。有小村依篁竹間。村上下柹木如簀。葉盡脫而實累累。照耀一壑。此亦一奇觀也。巗崖爭立。水石壯麗。比之昨日所見。伯仲間也。又山行十餘里。到白門堂。或云百巫堂堂卽路旁叢祠。林魈山魅之所依也。越巫吳覡之所聚也。撃缶罔晝夜。鷺翿無冬夏。堂中繪像。眩恠難狀。可唾不可留也。促飯着屐。不顧而出。令蒼頭缷鞍息馬。扶筇信脚。寸寸登險。遙瞻山脊。邈不知何處爲天王峯也。但以不失路爲幸。不以半途廢爲期。登登不已。則早晩必到絶頂無疑也。自此得寸爲寸。得尺爲尺。一擧足則登一級。一側身則跨一層。雖喉喘胸歐而不敢辭也。日午。始到哭巖。僧云。昔河東倅登上峯。到此力盡。遂慟哭而返。故以名。鄙哉。河東倅之無立志也。不量吾力。輕犯崎嶇。徒貪勝踐。唯入于林中。百里之塗未半。一簣之功旣虧。豈不爲後人所笑者乎。令僕夫汲水。各飮一勺。由此以上。前人踏後人頂上。後人見前人足底。捫蘿攀木。不堪其苦。或拄杖而立。或踞石而休。春澗顧余曰。努力進步。無似河東倅之爲人笑也。相與策倦而行。艱到帝釋堂廢址。
於于集卷之六 |
雜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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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月丁卯
又蹭蹬抵靈源菴。靈源。靜界也。喬基爽塏。俯臨群木。剖篔簹引飛泉。琮琤鳴玉。㵼下木槽中。淸瑩可以解渇。菴小不滿三四楹。而淸僻可愛。南對馬耳峯。東望天王峯。北負上無住。有名僧善修居之。率徒第演經。四方釋子多歸之。與詢之頗相善。餉之以松餻蔘餅八味茶湯。是山多竹實柹子栗子。每秋收而舂之以爲粻云。日晩風色颯然。前峯雲氣苒苒而生。知有雨候。遂促行轉獅子項。下長亭洞。牽脩蔓直下絶磴。過實德里。始見野田初決渠。白水決決。暮投君子寺。寺野刹也。埃氛滿堂。獨牧丹對禪房方敷榮。可賞。寺前舊有靈井。號靈井寺。今改以君子。未知取何義也。數日間淸遊雲表。有若羽化淸都。忽一夕擠落黃塵。使人神精逼塞。夜夢將魘。夫子所謂君子居何陋者。恐難服膺也。壬申。朝發。經義吞村。多感古焉。昔者。佔畢齋從此路向天王峰者也。彼彼我我。吾不必由斯。徑行三四里。至圓正洞。洞天弘敞。去去加勝。至龍游潭。層峯合沓。皆多石少圡。蒼杉赤松所攅聚。復以蘿薜經緯之。亘一大石。劈兩厓成巨峽。東江流其中而奔注之。噴沫舂撞。石爲猛浪所簸磨。或成窪。或成堆。或呀然而成罅。或坦然而成場。高低起伏數百步。萬千殊狀。不可以殫形。釋徒尙誕。指石缺者爲龍抓。石嵌圓者馬龍蟠。石中裂谺谽者爲龍抉穿而行。民之無知。咸以爲信。至此不覺頂禮。爲士者亦曰龍不見石。爲變化所使。余亦目其可駭可愕。想有神物宅玆。豈夸娥巨靈能斧斤以成之者。試以詩驗之。乃書一絶投之淵。以調戲之。俄而。厓窟中有如煙非煙之氣脈脈而昇。亂峰蒼翠之間。有殷殷之聲。閃閃之光。乍作而乍止。同行者遂褰裳徑渡。略彴走投于荒祠中以竢焉。須臾雨足如銀繩。飛雹大如鳥卵。一䝰驟至。座中年少輩色沮。幾失匙焉。移晷而後宇宙盤駁。日脚漏於雲際。遂緣厓而行迷失路。入灌叢中。草露濡裳。藤梢刺面。推且挽披荒榛。仄轉山腹而登。行行傴僂。折篁笋採蕨芽。行屩爲之滯淹。東過馬跡庵。攅柯挐蔓。故基猶存。夤緣山冢。十步九折。陟降之勞。無不汗顔。酸股繭足。若使被人役使爲也。其怨咨嗔怒。雖呵禁難止。而群行朋息。嘻笑盈路。豈非賞心之可娛也歟。遂入頭流菴。菴之北有臺。直南而望之。有飛瀑瀉于巖間。如懸玉簾數十仞。雖竟夕坐玩。不覺其疲。而會雨新晴。谷風淒緊。以爲過爽不可久淹。遂入禪房安頓焉。癸酉。侵晨而行掠甕巖。入淸夷堂。穿森木亂石叢。至永郎臺。俯臨陰壑。然昏黒。魄遁眼眩。攀木却倚。愕眙而不能稽。永郎者。花卽之魁也。新羅時人也。率徒三千人。遨遊山海。我國名山水。無不寓名焉。循山脊。指天王峯而東。山多烈風。樹木皆擁腫。枝柯向山而靡。苔髮骨樹。鬖鬖如人被髮而立。松皮柏葉之木。中無腸而榦四披。枝頭下搶干地。山益高而樹益短。山之下。濃陰交翠。而至此花梢未吐葉。尖如鼠耳。巖罅有積雪盈尺。掬而啗之。可以沃渇喉。有草纔抽芽。靑莖者曰靑玉。紫莖者曰紫玉。僧云此草味甘滑可食。擷之盈掬而來。余曰。僧稱靑紫玉。乃仙家所餌瑤草也。乃植杖手摘之。殆滿囊焉。前登少年臺。仰瞻天王峯。高出雲漢。無雜草木。只蒼柏聯緣而生。被氷霜風雨所侵暴。枯死骨立者十居二三。望之如頒白老人頭。殆不可盡鑷者也。少年云者。或稱永郞之流也。余意天王峯。長老也。此峯。奉承之如少年。故名之歟。下視群山萬壑。衆皺爛熳。此地尙然。而況於第一峯乎。遂飛杖登天王峯。峯之上有板屋。乃聖母祠也。祠中安一石塑。爲白衣女像。未知聖母是何人。或曰高麗王太祖母。爲其生育賢王。能統三韓。故尊祀之。式至于今。嶺湖之間。要福者歸之。奉以爲淫祠。仍成楚越尙鬼之風。遠近巫覡。憑玆衣食之。登絶頂。俯察儒士官人來。卽雉兔散藏身林薄中。伺其遊覽者。下山還聚焉。環峯腰列板閣如蜂房。將迎祈禠者宿留焉。托以宰殺爲禪家禁。繋牛畜于山下叢祠而去。巫者取以資其生。故聖母祠,白母堂,龍遊潭。爲巫覡之三窟。誠可憤也。萬曆三十九年辛亥四月日。默好翁記。
久堂先生集卷之十五 |
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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乃策馬而行十里。抵百巫堂。堂是淫祠。巫覡所會處也。所謂堂直者。例供遊人賓從。此則自龍游堂亦已然矣。暫憩堂中。捨馬乘藍輿。到河東巖。僧言古有河東守到此遇雨。迷失道。故名此巖云。自是山益峻路益險阻。四人魚貫而進。到舊帝錫堂基。
又曰一宿君子寺。遠上天王峯。月明吹玉笛。滄海舞群龍。乙酉乍陰。蚤朝還下。少留帝錫堂及百巫堂。夕到安國寺宿焉。是日下峯時。霰雪微灑。丙戌晴。設泡晩發。乘藍輿過金臺菴。菴在安國寺五里許。而地勢孤迥。一山面目。無少蔽虧。猶金剛山之於正陽南樓也。望見第一峯宿處。則一柱揷天。雲霓明滅。眞古人所謂怳然一夢瑤臺客也。有詩曰靑鞋踏破萬重山。更向金臺古寺還。第一峯頭昨宿處。白雲靑靄有無間。午抵涵虛亭。登亭後高臺。依然去時風景也。暫歇而過。夕宿沙斤驛亭。丁亥晴。謝道卿早發。與梁丈及永叔。並馬歷登雲皐亭。醉話移時。有詩曰醉上沙斤馬。臨流不用扶。平生得意處。肯羨執金吾。吟罷歸來鈴閣。便是舊吾。愁對雁鶩行。塵土遂已滿襟矣。
癸未仲秋晦日庚寅。高靈朴長遠仲久記。
해동잡록 1 본조(本朝)
송천희(宋千喜) |
○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우리 성종 때에 급제하고 성품이
강직 과감하였다. 일찍이 경상 감사(慶尙監司)가 되었는데, 함양군(咸陽郡)에 여자 무당이 있어 자칭 사람의 병을 잘 고친다 하니, 원근 사람이
구름 같이 모여들어 쌀과 베를 다투어 시주하거늘, 천희(千喜)가 매를 때려 이를 죽이니, 한 지방이 숙연해졌다. 관직은 이조 판서에 이르렀다.
春洲遺稿卷之二 淸風金道洙士源著 |
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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僧徒出迎於紅霞門。日色已暮。入窮玄堂。夜有山陰士人尹濯者來話。自言年前遊頭流之天王峰。其上盖有聖母祠。祠中有一婦人石像號天王。塗粉拖黛。眼彩淫淡。祠東礧空。有一小佛。俗稱其淫夫。屋梁上下。掛無數紙錢。常見女巫婆娑其中。有氣融結。陰穢之窟也。今年六月。忽有風雷起自峰頂。擊之粉碎云。余聞之駭曰。若然則吾自頭流山來。僧徒不言何也。尹生固言其眞的無疑。僧出粧銅古櫃示余。中有高麗太祖追贈希朗國師敎旨一通。又有光廟申起居于信眉長老手札一度。噫。屈千乘之尊。執敬於匹夫者。爲其抱先王之道也。夫浮屠何爲者。而使君父執敬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