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적암     #승안사   #화장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1권
 경상도(慶尙道)
함양군(咸陽郡)
 

승안사(昇安寺) 사암산(蛇巖山)에 있다. 선열암(先涅菴)ㆍ고열암(古涅菴)ㆍ신열암(新涅菴) 아울러 지리산에 있다. 화장사(花長寺) 화장산에 있다. 엄천사(嚴川寺) 엄천 북쪽 언덕에 있다. 마적사() 지리산에 있다. 고승 마적(馬迹)이 살았다는 것으로 명칭을 하였다. 앞에는 유가대(瑜珈臺)가 있고, 밑에는 수잠탄(水潛灘)이 있으며 탄 위는 곧 용유담(龍遊潭)이다. 금대암(金臺菴)ㆍ보월암(寶月菴)ㆍ안국사(安國寺) 아울러 지리산에 있다. 본조행호(行乎)가 창건한 것이다.

 

佔畢齋集卷之七
 詩集
花長寺僧寂然。持蘭而至。 


巖谷成嘉遁。胡僧斸白雲。風騷曾托契。塵土不關君。穗已先春擢。香宜入夜聞。花瓷與釦砌。閑草謾氛氳。

 

佔畢齋集卷之十
 
陪晉山君。宿花長寺。 


偸閑陪杖屨。携被宿鴦宮。虎嘯一林雪。僧鳴半夜鍾。012_288d泉淸供茗飮。松偃掃塵蹤。惆悵名途客。煙霞興易濃。

 

於于集卷之六
 雜識
遊頭流山錄

壬申。朝發。經義吞村。多感古焉。昔者。佔畢齋從此路向天王峰者也。彼彼我我。吾不必由斯。徑行三四里。至圓正洞。洞天弘敞。去去加勝。至龍游潭。層峯合沓。皆多石少圡。蒼杉赤松所攅聚。復以蘿薜經緯之。亘一大石。劈兩厓成巨峽。東江流其中而奔注之。噴沫舂撞。石爲猛浪所簸磨。或成窪。或成堆。或呀然而成罅。或坦然而成場。高低起伏數百步。萬千殊狀。不可以殫形。釋徒尙誕。指石缺者爲龍抓。石嵌圓者馬龍蟠。石中裂谺谽者爲龍抉穿而行。民之無知。咸以爲信。至此不覺頂禮。爲士者亦曰龍不見石。爲變化所使。余亦目其可駭可愕。想有神物宅玆。豈夸娥巨靈063_590c能斧斤以成之者。試以詩驗之。乃書一絶投之淵。以調戲之。俄而。厓窟中有如煙非煙之氣脈脈而昇。亂峰蒼翠之間。有殷殷之聲。閃閃之光。乍作而乍止。同行者遂褰裳徑渡。略彴走投于荒祠中以竢焉。須臾雨足如銀繩。飛雹大如鳥卵。一䝰驟至。座中年少輩色沮。幾失匙焉。移晷而後宇宙盤駁。日脚漏於雲際。遂緣厓而行迷失路。入灌叢中。草露濡裳。藤梢刺面。推且挽披荒榛。仄轉山腹而登。行行傴僂。折篁笋採蕨芽。行屩爲之滯淹。東過馬跡庵。攅柯挐蔓。故基猶存。夤緣山冢。十步九折。陟降之勞。無不汗顔。酸股繭足。若使被人役使爲也。其怨咨嗔怒。雖呵禁難止。而063_590d群行朋息。嘻笑盈路。豈非賞心之可娛也歟。遂入頭流菴。菴之北有臺。直南而望之。有飛瀑瀉于巖間。如懸玉簾數十仞。雖竟夕坐玩。不覺其疲。而會雨新晴。谷風淒緊。以爲過爽不可久淹。遂入禪房安頓焉。癸酉。侵晨而行掠甕巖。入淸夷堂。穿森木亂石叢。至永郎臺。俯臨陰壑。然昏黒。魄遁眼眩。攀木却倚。愕眙而不能稽。

萬曆三十九年辛亥四月日。默好翁記。

 

於于後集卷之二
 
遊頭流山百韻

 

頫視龍游出氛靄。窮探馬跡(名)歷叢榛。楸城淨界開蓮塔。甕石神坊簇榦杶。林聳堵波(梵語塔也)靈虎守。泉懸莾邏(梵語增也)飮麋馴。棧危獅頂毛頻竪。衣冷夷堂體欲皴

 

東谿集卷之二 豐壤趙龜命錫汝甫著                       조구명(趙龜命, 1693~1737)
 
龍游潭記 


甲辰八月初吉。伯氏發行。向智異。余及遇命,載福從215_028a焉。沙斤督郵權君熻。亦與其子尙經俱。先賞龍游潭。地勢幽邃。石皆犬牙。水十步九折。盤渦激射。其聲若雷。以龍堂之在對岸也。編木橋之。下臨不測。懸危凜慄。不可越也。傍橋躐石而東者百餘武。有大石附岸橫跱。圍若環玦。䨟若樽罍。其後數丈石。痕作蹊。蜿蜒以接之。若龍之抑首而撥尾也者。磨礱瑩滑。狀極詭怪。潭之名所由起也。是夜。與定慧師。宿君子寺。師云昔有馬迹祖師。結夏于潭上。爲水響之妨於聽講。怒其。鞭而逐之。其負痛閃挫。而形于石者如此。是說也怳惚不經。人不肯信。余惟天下事有不可以常理215_028b盡之。韓子謂浮屠善幻多技能。安知其無降龍伏虎之術。而龍之性不見石。入石則石爲之透。以爲堅頑難陷者。特人之所見然爾。人之於人。猶或不相測其情狀。况於神龍之變化哉。謂有是事而信之。妄也。謂無是事而不信之。亦妄也。盖水石之離於山北者。玆潭爲最。余喜其氣勢奇壯。使遇命題五人名於石之南壁。自題石抉川駛龍怒神驚八字於下。將使石工刻以識之。詩曰。地勢陰森最。川流激射來。風雲龍拔出。巢宅石穿回。凜若深秋氣。公然白日雷。危橋跨不測。生路渡方開。

 

제 목 마적사지 (馬迹寺址)
작성자 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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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치


임천강을 건너 송전리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면
우측은 문수사, 좌측은 노장대 가는 방향이라 이정표가 서 있다.
좌측의 문수사 주변 능선을 타고 노장대에 오를 수 있지만
문수사 주변 임야가 문수사 땅이라는 명분으로 문수사에서 접근을 막고 있어
노장대 가기 위해서는 운암마을로 돌아가라고 이정표를 달아놓은 듯 하다.

*마적사지 가는 길이 가로 지르는 송전리



마적사지는 문수사 골짝에서 우측 능선을 넘어 있으므로
문수사 방향을 따라 올라가면 수십 가호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송전리를 만나게 되고
송전리 마을의 좌측 위로 계속 이어지는 문수사 가는 길과 헤어져
송전리를 한가운데로 가로지르는 시멘트길을 따라 몇 구비를 돌아간다.


*송전리에서 마적동을 지나 송대마을로 가는 길에서 내려다 본 용유담
(반원형 용유담 다리 교각이 보인다.)



용유담을 우측 멀리 발아래 내려다 보며 능선 사면을 타고
선녀굴 아래 송대마을 까지 가는 길은 포장 비포장이 반복되며
좌측에 민가 2채가 있는 곳이 송전리 지나 첫번째 마을인 마적사가 있던 마적동이다.

*마적동 풍경 (두채 민가의 좌측 마적사지에 대종교 사찰이 들어서 있다.)



2채 민가의 좌측으로 올라가면 대종교 사찰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마적대사의 전설을 간직하며 통일신라 시대 창건되었다는 마적사의 폐사지이다.

*대종교 사찰이 들어서 있는 마적사지 전경




2. 마적사지의 의의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을 따라 정확하게 천왕봉에 올라가는 작업은 매우 어렵다.

일행들이 함양을 떠난 이후 중봉에 도달할 때 까지 여정을 말해주는 지명 중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현재와 전혀 달랐던 산길의 묘사만으로는
그 길을 찾을 길이 없다.

다만, 몇차 방정식 풀 듯 유사한 길을 올랐던 유람록들을 복수로 참고하여
사라진 지명들을 비정해 보는 작업에서 그 실마리를 기대해 본다.

이런 측면에서 마적사지는
유몽인 선생의 천왕봉 등정로 초입에 기록되어있는 곳으로 실체가 알려져 있어
그 이후의 등정로를 추정해 보는데 중요한 정보가 되어주는 곳이다.


*유몽인 선생의 1611년 [유두류산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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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마적암을 지났다.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넝쿨을 잡아당기며 오르니 옛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산비탈을 기어오르다 보니, 열 걸음에 아홉 번은 넘어졌다.

드디어 두류암에 들어갔다.
암자 북쪽에 대가 있어 그 곳에 올라 정남쪽을 바라보니,
바위 사이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는데 마치 옥으로 만든 발을 수십 길 매달아놓은 것 같았다.
저녁 내내 앉아 구경하더라도 피곤하지 않을 듯 하였다.

새벽에 길을 떠나 옹암을 지나 청이당에 들어갔다.
숲을 뚫고 돌무더기를 가로질러 영랑대에 이르렀다. 그늘진 골짜기를 굽어보니 어두컴컴하였다.

산등성이를 따라 천왕봉을 가리키며 동쪽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나아가 소년대에 올랐다. 천왕봉을 우러러보니 구름 속에 높이 솟아 있었다.

드디어 지팡이를 내저으며 천왕봉에 올랐다.
봉우리 위에 판자집이 있었는데 바로 성모사였다.

**돌베개출판사 [선인들의 지리 유람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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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적사지에서 영랑대 사이에 등장하는 지명들, 즉
두류암, 옹암, 청이당의 위치를 아직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마적사지와 영랑대(소위 말봉) 사이, 즉 동부능을 포함한 어름골 일대임은 명확하다.

여기서는 일단 하나의 방정식만 만들어 놓고
방정식을 더 만든 후 미지수와 방정식의 수가 같아질 때 풀어보기로 한다.




마적사지를 찾아보는 또 하나의 의의라면
마적도사의 전설을 간직한 마적사의 흔적을 찾아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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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적도사에 관한 첫번째 전설

지금의 경남 함양군 휴천면 용유당소 근처에 마적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마적도사라는 법우화상이 살았다.

하루는 천왕봉에서 흘러내리는 엄천강에 구름 한 점 없는 청천 맑은 날인데도
붉은 황톳물이 홍수져 내려가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강을 따라 올라가 보니
지리산 천왕봉의 천태산 마고할멈이 앉아 오줌을 누더란다.
화상은 이 여자가 바로 천생배필임을 알고 부부의 인연을 맺고 결혼을 하였다.

부부는 딸을 아흔 아흡이나 낳았는데 모두가 무당이 되었다.
즉 마고할멈인 어머니까지 합쳐 백명의 무당이 되어 백무동이 생겨났고
그들이 조선 팔도에 흩어져 팔도 무당의 씨가 되었다고 한다.

2) 마적도사에 관한 두번째 전설

용유담 가에는 나귀바위와 장기판이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 마적도사가 종이에 쇠도장을 찍어서 나귀에게 부쳐 보내면
그 나귀가 어디로인지 가서 (엄천사로 갔으리라고 짐작이 된다)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등에 싣고 오게 된다.

그 나귀가 용유담 가에 와서 크게 울면 마적도사가 쇠막대기로 다리를 놓아 나귀가 용유담을 건너오곤 하였다.
하루는 마적도사가 나귀를 보내놓고 장기를 두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용유담에서 용 아홉 마리가 놀다가 싸움을 시작하였다.

용이 싸우는 소리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장기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장기에 정신을 빼앗기고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와 자연에 도취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를 법도 하다.
나귀가 와서 울었는데도 마적도사는 용의 싸우는 소리,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에
나귀의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장기만 두고 있었다.
나귀는 강변에 짐을 싣고 서서 힘을 다해 울부짖었으나 반응이 없어 그대로 지쳐서 죽었다고 한다.

이렇게 나귀가 죽어서 바위가 되었는데 그 바위가 곧 나귀바위이다.
마적도사는 장기에 몰두하다 나귀가 죽는 줄도 몰랐다고 화를 내며 장기판을 부수어 버렸다.
그 장기판 부서진 조각이라는 돌들이 지금도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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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두 전설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그야말로 전설이다.
다만, 통일신라 무열왕때 실존 인물이라는 설이 있는 마적도사가 마적사를 창건하였다 하니
마적사의 역사가 통일신라시대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적사지에 사찰 유물로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다행히 통일신라시대 유행한 형식을 띄고 있는 석등의 하대석인데
더 이상 절터의 흔적이라곤 없이 사라져버린 마적사지의 창립 연대를 말없이 증명해 준다. .

*마적사지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 형식 석탑의 하대석




3. 탐구방향


유몽인 선생의 [유두류산록]의 여정에서 마적사 다음으로 등장하는
[두류암]과 [옹암]의 짐작되는 위치가 있는데

마적사지에서 능선을 타고 노장대를 거쳐 상내봉을 넘어 어름터로 들어가는 길과
마적사지에서 계곡 사면을 타고 송대마을에서 벽송사 능선을 넘어 어름터로 들어가는 길을 찾아봄으로써

[두류암], [옹암]과 [청이당]을 지나 [영랑대]에 올랐던 여정에 관한
지리산길 방정식을 풀어보고자 한다.
김용규 마적도사의 전설과 장기판과 아주 관련이 있을듯한 곳이 마적(휴천면 송전리 마적마을)마을 입구 산중턱에 있습니다. 장적 20여명이 앉아도 됨직한 큰 바위이며 바위 바로 옆엔 수령 약 500년이 됨직한 우람한 소나무가 자라고 있고 바위엔 음각으로 세진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용유담이 아주 가깝고 바위에 올라서면 용유담과 맞은편의 견불동 마을도 훤히 보이는 곳입니다. 마적도사와 장기판 전설의 곳인것 같아요. 함양군에서 경남도에 기념물로 의뢰한 곳이기도 한데 일반 세인들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승안사

佔畢齋集卷之十

 
效淵明。問克己。克己時在昇安寺。熏浴理疾。 


聞君入射陰。寺在第幾峯。雲煙定相媚。猿鶴誰能從。得非採三秀。聊復絃松風。蘭湯日百沸。幽憂攻未攻。

 

도연명체를 본받아 극기를 위문하다. 극기가 이 때 승안사에서 훈욕을 하면서 병을 치료하고 있었다[效淵明問克己克己時在昇安寺熏浴理疾]


그대가 사음산에 들어갔다 하는데 / 聞君入射陰
절은 몇째 봉우리에 있는고 / 寺在第幾峯
구름 놀과는 정히 서로 좋겠으나 / 雲煙定相媚
원숭이 학은 누가 능히 따르리오 / 猿鶴誰能從
삼수를 캐는 일이 아니거든 / 得非採三秀
다시 솔바람 소리를 들을 터인데 / 聊後絃松風
난탕은 날로 백 번 끓이더라도 / 蘭湯日百沸
깊은 근심은 다스리지 못한다오 / 幽憂攻未攻


[주D-001]삼수 : 지초(芝草)를 이름. 지초는 1년에 꽃을 세 번씩 피우기 때문에 삼수라 한다.
[주D-002]난탕 : 난초를 물에 넣어 끓이는 것을 이르는데, 이 향수(香水)를 몸에 발라 찜질하는 것을 바로 훈욕(熏浴)이라고 한다.

 

一蠹先生續集卷之四
 附錄
世系源流

 

六乙國史。乙作一。我世祖丁亥。以咸吉道虞侯。立殣於賊臣施愛亂。贈漢城府左尹。墓。郡東昇安丑坐。配貞夫人慶州崔氏。牧使孝孫女。墓。昇安竹岡子坐。有三子。汝昌。汝裕。縣監。無后。汝寬。參奉。生二子。希顏。文都事。希參。縣監。縣監生二子。善男,彥男。彥男出015_541c系從叔希卨后。汝昌。卽先生。 先生事蹟。載在國朝儒先錄及事實大略。墓。昇安考墓左麓艮坐。配。貞敬夫人完山李氏。桃平君末生女。定宗大王孫。墓。公墓上艮坐。

 

佔畢齋集卷之八
 
游頭流紀行 


先涅庵
門掩藤蘿雲半扃。雲根矗矗水泠泠。高僧結夏還飛錫。只有林間猿鶴驚。

議論臺
兩箇胡僧衲半肩。岩間指點小林禪。斜陽獨立三盤石。滿袖天風我欲仙。

宿古涅庵
病骨欲支撑。暫借蒲團宿。松濤沸明月。悞擬遊句012_269b曲。浮雲復何意。半夜閉岩谷。唯將正直心。倘得山靈錄。

 

고열승에게 주다[贈古涅僧]


명예 구하고 이끗 쫓는 두 가지 일이 분분하여 / 求名逐利兩紛紛
승려와 속인을 이젠 쉽게 분간할 수 없으니 / 緇俗而今未易分
모름지기 두류산 최고봉까지 올라가야만 / 須陟頭流最高頂
세간의 먼지가 그대에게 붙지 못하리 / 世間塵土不饒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