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현대 인물


양재천: 2006년 1월 10일(73세) 재경 경남 도민회 회장 취임, 재경 함양군 향우회 회장 역임, 제일탄소공업 주식회사 대표이사

이철우: 2006년 1월 10일(57세) 울산광역시교육청 부교육감 명예퇴직. 지곡면 출신,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1974년 마산시청 주사보, 경남도청, 내무부, 국무총리실, 대통령 민정비서실, 경상대학교 사무국장, 2002년 7월 울산광역시부교육감, 2005년 8월 교육감권한 대행. 1월 23일 한나라당 함양군수 후보 확정 발표

배종원: 2006년 1월23일(59세) 함양군 기획감사실장 명예퇴직 발표. 2월 7일 퇴임식. 3남 1년 중 장남, 함초, 함중, 방통대 학사, 경상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1968년 함양군 공무원, 2000년 지방서기관, 2006년 5월 31일의 기초의원 출마 선언

강대옥: 함양군번영회 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함양군협의회 제8대 회장(2006.03.17.금.11:00 취임식)

김륭: 시인, 뉴스함양 편집국장(2006), 지리산문학회 회장(2006), 88 불교문학상 신인상, 05 제1회 월하지역문학상, 05 제3회 CJ문학상

김재웅: 2006년 1월 25일(49) 함양농업협동조합 조합장 당선

주요경력 :
 함양군의회 의장(현)
 함양군 장학회 이사(현)
 함양군 바르게 살기 협의회 이사(현)
 함양군 농촌발전 심의위원
 함양군농업경영인연합회 회장
 함양군 자연보호 협의회장
 함양라이온스클럽회장

김재주: 1940년생.

김재주씨 국민중심당 후보 도지사 출마

추곡전량 수매, 권역별 실버타운 건설 등 공약


 김재주(66) 전 한국산업단지공단 상무이사가 10일 국민중심당 후보로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상무이사는 이날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직생활을 통해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경남도를 발전시키고 320만 도민의 건강과 행복을 책임지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 전 상무이사는 또 “지금까지 전 도민의 피와 땀을 받아 도정을 수행했지만 이제는 피와 땀을 전 도민에게 돌려주는 도정이 필요하다”며 “부채를 책임지고 생산된 벼를 도 예산 약 5천600억원을 들여 전량 수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외에도 경남도내 소재 고교와 대학졸업자를 공무원으로 특별임용하고 권역별 노인 실버타운 건설. 올림픽 유치 등을 공약했다.

 함양 출신인 김 전 상무이사는 함양 중·고교와 동국대를 거쳐 내무부 공무원으로 출발. 창녕 부군수. 경남도공무원교육원장. 의령군수를 지낸 뒤 새천년민주당 함양거창지구당 위원장으로 정당생활을 시작하여 한국산업단지공단 상무 등을 역임했다. 허승도기자 huhsd@knnews.co.kr


입력 : 2006-03-11 / 수정 : 2006-03-10 오후 9:15:00

 

민노당 새 대표 문성현
[한국일보 2006-02-11 00:18]    
 

민주노동당의 새 대표에 문성현(54) 경남도당위원장이 선출됐다.

민노당은 10일 대표 최고위원 결선투표에서 문 후보가 53.62%의 득표율로 46.38%에 그친 조승수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고 밝혔다.

문 후보의 당선은 당권파인 민족해방(NL) 계열이 비당권파 범좌파(PD) 계열(조 후보)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를 장악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당 지도부는 주한미군 철수나 SOFA개정 등 통일운동에 주력할 것으로 보여 비정규직 철폐 등 노동계와의 연대강화를 주장하는 의원단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경남 함양 출신인 문 신임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9년 프레스공으로 노동계에 투신했고 전노협 공동의장과 사무총장, 민노총 금속연맹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 민노당에 입당, 현실정치에 뛰어들었으며 계파색이 엷다는 평이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이름: 강동욱 (yourmail@yourmail.net)
홈페이지: http://kdo.gnnews.co.kr
2004/3/29(월)
박노석과 함양  
박노석과 함양

박노석(본명 박영환)은 1913년 함양군 안의면 내동마을에서 박정석의 2남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함양 안의는 예로부터 명승지로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아들었던 유서깊은 고장이다.
“70년전 내 나이 여남은 살 전후 그 때에 있었던 일이/지금도 가끔씩 생각에 떠 올라 세월이/흐를수록 더욱 그리운 추억으로 되살아난다//(중략)//우리고장 동구밖 ‘방단속’이란/넓은 들판은 참외밭으로 유명했다//수십채의 원두막이 즐비해 있었고/이 시간이 되면 남여노유 할 것없이/무슨 축제처럼 사람이 들끓었다//그 방단속을 가자면 우리고장/ 앞냇물 금호강 하류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가야 하는데 나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신나게 따라 갔었다/그때 발밑의 그 맑은 물빛과 그 속에 흘러가는 금모래, 모두들 버선을 벗고 하루의 고달픔을 잊은 듯 희희낙락 징검다리를 건너가던 아낙들의 행렬, 그 소박한 낭만을 요즘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서글픔이 시시로 나를 외롭게 한다.”
박노석 시인이 80세를 앞두고 지은 ‘징검다리를 건너가던 그날의 추억’이란 시다.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온 박시인에게 고향은 향수 그 자체로 녹아있음을 알 수가 있다. 박노석은 초대 칸트 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하기락과 함께 서당에서 한학공부를 했지만, 15세 무렵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해방이 되기 전까지 고향 함양에서 조선일보 지국을 경영하면서 각종 민족계몽운동, 독립지원운동 등에 적극 참여했고, 일제 말기에는 조선 근로자 청년동맹이란 비밀결사에 가담하였다.
해방이 되자 박노석은 부산으로 향한다. 1946년 부산에서 ‘자유민보’의 창간동인으로서 전무 논설위원을 역임하고 , 또 경상남북도 아나키스트 연맹의 기관지인 ‘자유연합’을 하기락 등과 함께 발행했다.
그리고 1957년 경남일보 편집국장으로 진주와 인연을 맺게 된다. 진주에서 동기 이경순, 내고 박생광 등과 깊은 친분을 나누게 된다.
“동기 이경순 시인과 내고 박생광 화백과는 40년 세월을 10년장인데도 허교를 할 정도로 우리는 자별한 벗으로 사귀어 온 터인데… 내가 동기를 처음 만난 것은 해방이 되자그가 일본 동경서 돌아와 1946년 2월 21~22일에 있었던 경남북무정부주의자 대회 석상이었다. 1956년 내가 진주로 옮겨 살면서 경남일보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는 조석 상대해가며 술을 마셨다. 그래서 ‘영문동인’으로 올해 35회가 되는 개천에술제 문학부심사위원으로 오랜 세월을 두고 동참도 했고….”
역시 아나키스트로 문학활동을 같이 했던 진주 시인 동기 이경순을 생각하며 쓴 글의 일부분이다.
박노석은 ‘갈숲 33호’에 “진주 경남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하면서부터 뜻있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고, 나의 인생여로에 매우 중요한 시절이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때 그는 영남문학회를 만들어 동인지 ‘영문’을 발간하여 그 주간으로 활동했다.
박노석은 진주를 떠나 다시 부산으로 옮겨 향파 이주홍, 청마 유치환 등과 교유하며 시작활동을 하다가 1971년 문우들이 고이 잠들어 있는 양산 백운산 공원묘지 옆에서 세상일과 인연을 끊고 살았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은 현재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엔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박노석은 고향을 생각하며 ‘함양의 노래’를 지었다.
“천왕봉 서린기상 상림숲 모도우고/문창후 세운 예도 천년의 선비의 고장/위천수 내린 물이 엄천강 줄기되어/목화밭 덤불 지나 남강 혼 꽃피웠네/아 자랑스런 내 고장 함양//황석산 피바위에 애국심 어려있고/박연암 실학정신 슬기로 다진고장/좌안동 우함양 그 영예 새로 다져/의지로 지조로 미래를 열어가리/아 사랑하는 내고장 함양”

오인태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