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담 정시한의 지리산과 덕유산 유람 - <산중일기>


 1686년 숙종 12년 병인 3월  퇴계학파 성리학자 원주 거주 우담 정시한 영호남 여행. 4월 11일 아침에 거창 출발, 사근역에서 말 먹이 주고 저녁에 함양읍 냇가 서쪽 서원촌(백연서원) 김후달(金後達) 집에 도착, 군수 심도명(沈道明,沈澈의 字)이 방문, 같이 숙박. 12일 냇가 방축 구경. 13일 최고운과 김점필을 모신 백연서원 참배, 심원록(尋院錄)에 서명. 이은대에 등람, 식후에 서계 유람. 14일 아침에 매일 동숙하던 군수와 작별, 오후에 안양사(安養寺: 휴천면 문정리 법화사)에 도착. 15일 여암(驢巖), 삼성대(三聖臺), 용유당(휴천면 용유담) 유람, 오후에 군자사 도착, 향로당에서 숙박. 16일 진사 박세혁 내방, 저녁 금대암 방문, 안국사 향로전에서 숙박. 17일 벽송암 종장 천륜(天倫) 내방, 저녁 서암 방문, 노승 정찬 영접. 19일 아침 두타암, 무량굴, 상무주 방문, 묘적암 수좌 사철(思哲) 내방. 20일 묘적암 방문, 상무주로 귀환. 21일 윤판옥 수리, 견성암 종장 자징(自澄), 묘적수좌 사철 내방. 22일 군자사 승통 법안 내방. 24일 지리산 산불. 25일 상무주암을 떠나 천인암(千人菴), 상고대암(上高臺菴) 방문, 오후 실상사 도착. 26일 고철불 관찰. 27일 저녁 천인암으로 이거. 29일 영기 수좌 실상사로 귀환. 윤4월 1일 견성암 왕래. 17일 도솔암에서 천왕봉 등정, 반야봉 유람, 저녁 칠불암 도착. 19일 금류동(金流洞) 도착. 5월 1일 삼일암 왕래. 6월 28일 군선요어(群仙要語) 3자 읽음. 7월 4일 황정경오장도 6장, 도장초(道藏抄) 10장 읽음. 5일 황정경채취도 이하 수십 장 종편 읽음. 23일 황정 오장도, 도장초 심신론(心神論) 읽음. 30일 저녁 연곡사 가서 비전의 선각선사비를 보다. 8월 4일 황정 도장초 17장 다 읽음. 6일 황정 채약도 등 10여 장 재독. 20일 불일폭포 관람. 화개동을 지나 구례현 화엄사 향로전 숙박. 부도암에 올라 연기(烟起)조사 석상, 선각조사 모친 석상 관람. 22일 운동 비전 참배, 실상사 도착. 24일 부도전에서 쉬고 견성암에 오르다. 25일 천인암과 상무주암에 오르다. 9월 2일 묘적암 방문, 박광선(朴光善: 함양읍내 서원<백연서원>촌에 산다고 함) 내방. 3일 묘적암에서 천인암으로, 견성암으로 하산하여 군자사 도착. 저녁 후에 말 타고 금대암 방문. 7일 금대암 출발 등구창촌(登龜倉村) 도착, 안국동암 각자승(刻字僧) 채간(綵侃) 동행 오도재 넘어 제안역촌에서 비를 만나 무릅쓰고 전진, 함양읍 냇물 서쪽 백연서원촌 김후달(金厚達) 집에 도착. 저녁 사근찰방 우홍성(禹弘成)과 함양군수 내방. 8일 아들 정항, 김후달과 이은대에 올라 함양읍내를 바라보고, 걸어서 학사루에 가서 등람. 군수와 작별하고 개평촌에 도착, 상주 출신으로 장가온 생원 황재겸 집에 숙박.

9월 9일 정일두선생과 노옥계 집터를 참관, 안음현을 지나 화림동 동구에 도착, 향교 앞 긴 다리를 건너 점풍루에 등람, 심진동과 화림동의 큰 내가 합쳐지는 경계에 반하여 이사와 살고 싶어 함. 일두선생 유람처인 군자대(군자정) 도착, 신평 전좌수촌에서 말 먹이고 옥산창촌(玉山倉村) 김진추 집에 숙박. 10일 덕유산 영각사 도착, 저녁 후 절 뒤 2리 은경대암(隱鏡臺菴) 등람, 천순 수좌 방문, 아들 정항도 와서 같이 숙박, 암승은 일천(一天)과 선찬(善贊: 영각사 표석비<숙종10년,1684>에 보이는 선찬임)이다. 12일 강선암에 내려가다. 영각사 문을 지나 남현(남령)을 넘어 월성촌(月城村)에서 말 먹이고  농소막에 도착, 긴다리 건너 마정현 지나 옛 안음현 관창촌를 바라보고, 강남불촌의 가섭암에 숙박. 13일 3좌 가섭상을 참관. 14일 고현을 지나 올라가 수송대 유람, 다시 고현을 지나 거창읍에서 말 먹이고 가조현 문좌수 남로(文南老) 집에서 숙박. 이하 생략(1997년 9월 23일 화요일 우담전집에서 함산 초록)

정시한 [, 1625~1707]

요약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 나주()
우담()
별칭 자 군익()
활동분야 문학
주요저서 《우담집》,《산중일기》

본문

본관 나주(). 자 군익(). 호 우담(). 독학으로 성리학()을 연구, 원주()에 은거하여 농업에 종사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유일()로 천거되어 집의() ·사업()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뒤에 진선()에 올라 1691년(숙종 17) 앞서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를 폐위시킨 일을 잘못이라고 상소하였다가 삭직, 다시 기용되었으나 사직하였다.

1696년 희빈() 장()씨의 강호()를 반대하는 상소를 하는 등 당파를 초월하여 자기 소신을 밝혔다. 1704년 노인직()으로 중추부첨지사가 되었다. 그의 학문은 정약용() ·이익() 등 실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원주의 광암사()에 제향되었다. 저술에 《우담집》을 비롯하여 《산중일기》 《임오록()》 《관규록()》 《사칠이기변()》 《변무록()》 등이 있다.

산중일기 []

요약

조선 숙종 때의 학자 정시한(:1625~1707)이 삼남 일대를 돌아본 기행록.
구분 기행록, 필사본
저자 정시한()
시대 조선시대(1686~1688)
소장 고려대학 중앙도서관

본문

필사본. 2권 2책.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1686년(숙종 12) 3월 13일에 원주() 본가를 출발하여 청주 공림사()를 거쳐 속리산() 법주사() 등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각 도의 명산과 고찰을 돌아보고, 겸하여 저자의 친척집을 두루 방문한 다음 1688년 9월 19일 원주 대야()의 본가로 돌아올 때까지의 일을 상세하게 기록한 일기이다. 이 정확한 기록은 당시의 사찰() 현황을 살펴보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우담선생문집()》 권19∼20에 수록되어 있으며, 1968년에는 연세대학교에서 민영규() 교수의 집교()로 인문과학자료총서() 제1집으로 영인()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