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성씨사


함양박씨:

함양여씨:

함양오씨:

뢰谿集卷之七
 
咸陽郡三姓族譜序 代郡守作 


吾郡三姓族譜成。客有難於余曰。聖人制禮。自高祖至于曾玄。有五等之服。斬衰而齊衰。朞而大功,小功而緦三月。其於厚편001成俗。意雖無窮。而勢有所不得行。故斷之以緦以下則與路人等。親疏有間。降殺有差。于以篤親親之義。于以015_191a垂法於後來。莫可尙矣。而今子之譜三姓也。倂載緦以下之親。因附之以異姓。雖至更十餘世。而猶不欲與路人同。此聖人之所不能行。而子欲勝之。無乃有戾耶。曰。是亦有說。予豈及聖人之制。此亦▒救世俗之弊而云耳。譬諳穀。以握粟而種之。秋而獲數斗。數斗而種之。又得數十斛。推而至於千倉萬箱之多。原其初。實本於一握粟。而如是耳。夫人亦然。凡爲緦以下路人者。其始雖出於一身。而終爲聖人▒有所不行之地。良可嘆也。世衰道微。人心淆薄。甚者。不孝不015_191b友於所親。而相殘於聖人之▒中者。不知幾何人。此吾所以不論內外親疏。而各於世次派系。詳書所出。以明夫如路人者其初一人之身。而不忍疏遠之。況所當親所當厚者。可不親之篤厚之至耶。此吾所以深抉聖人之敎。而矯世俗之薄也。此吾所以譜之之意也。郡本三姓。而吾鼻祖林淸生子列,子章等。至于今幾百有餘年間。來雲徧國中。而闔郡編戶之氓。居三之一。皆是吾鼻祖之後。某朅守玆地以來。分雖有民長之間。而以官府治之者。莫非吾之同根也。而況015_191c世傳林淸墓尙在南村。松楸鬱鬱。歲時伏臘。難禁孝思之感。而回瞻近巷。其亦有苗裔者乎。以吾一孫。着此中而治衆孫。所宜乳之以仁恩而撫摩之。不可視之如路人。然後吾鼻祖之靈。亦當瞑目於泉壤矣。於衆人。則擧斯心而加之而已。此非吾私道。凡爲長民者之術。而僕則未遑。悔之何及耶。今當滿瓜而還。敢以情素。寓諸譜一通。以遺鄕父老。而因以自勵焉。成化紀元十七年暮春上澣。前郡守某。敍。*(전군수 呂忠輔)

고령유씨:

佔畢齋文集卷之二
 
兪處士墓誌銘


成化十八年壬寅冬十一月初三日。咸陽省谷之處士君。卒于家。得年八十有二。其孤好仁。以宗直相從於文苑甚久。且曾爲郡大夫。知厥考爲詳。故再以書乞銘。嗚呼。其可辭諸。君諱。字某。高靈縣人。其遠祖迪珍。爲吏于縣。子松奇。以一戶三丁。免吏籍。松奇四世孫。仕至通禮門祗侯。甫生堅伯。軍器少監。堅伯生。監門衛中領郞將。卽君之012_438c考也。妣徐氏。保勝郞將安敬之女。建文三年辛巳六月日。君生于全羅之長水縣。早孤。徐夫人撫之。使就業。旣長。通經書大義。屢從鄕薦。連不得志。遂絶意榮利。而甘於澹泊。一畝之宮。一簞之食。晏如也。性又醞籍。與物無競。故鄕黨愛之。無間言。中年。喪其耦。再壻於咸陽李氏之門。因家焉。有子三人。年未壞齒。輒敎之以詩書。開導誘掖。不資外師。好仁中司馬試。大播華問。未幾。登第還鄕。余方爲郡。大合兪,李二氏之族黨。設榮宴于公堂。君蒼顏素髮。醉而起舞。新恩具袍笏。戴賜花。與歌姬數人。左012_438d右挾掖焉。一郡來觀者。咸咨嗟歆艶。由槐院,太常。選入蓬館。昵侍經幄。其季好禮。踵兄有詩名。亦以司馬高弟。雄賢關。今夫搢紳士大夫。一身已致休赫。而縱子弟於琴棋伎術之中。異時祖先之基業。蕩然無遺者。或有之。其視君。爲何如也。兪氏之先世。不甚顯。自君之子孫。其昌矣乎。君之未卒。郡以尊年間于朝。卒之明年四月。將仕之命始下。嗚呼。可哀也已。君前配陳氏。司直普祥之女。後配氏。錄事之女。三男四女。竝李出。好仁。其長也。好仁娶李敏道女。生二男。曰。曰㻑。好義朴碩女。012_439a生一男。曰㺹。好禮劉永壽女。長女適某。次適某。二女在室。以明年十月某日。窆于某原。銘曰。不能自膏。而發於嗣。斧藻德學。方將未已。人或不知。以爲騂角。我明其自。用誌玆石。

 

佔畢齋集卷之十八
 
居士挽章 


醞藉居士。鄕閭孰不欽。家無三釜粟。經勝滿籝金。宰樹噓風急。桓碑隱霧深。射陰山上月。空照棘人心

 

佔畢齋集門人錄
 門人錄
附門人錄
好仁字克己。高靈人。正統乙丑生。壬午。生員,進士。甲午。登第。官至陜川郡守。年五十卒。魚得江銘墓碣。序略曰。忠孝淸儉。沈重簡嚴。詩名高古。筆力遒勁。人稱三絶。家世淸貧。又不營業。先012_500d生文學冠一世。公不讓焉。嗚呼。以德望。遇知聖明。可試素蘊。而屢屈府檄。養又不終。止於知命。痛哉。臨終。語子曰。君子。要須不欺君。汝若得一官。當思我言。家于雷溪。因以爲號。有稿數卷。

 

葛川先生文集卷之四 附錄
 行狀
[行狀 鄭惟明]

先生娶高靈氏。卽司憲府掌令뢰溪先生之孫。其考進士諱。其妣昌寧氏。卽忘機堂漢輔之女。弘治甲寅九月初五日。實夫人初度也。夫人性醇德惠。佐先生無違行。先先生十三年卒。子男三人女一人。男長二人皆夭。女適蔚山郡守李求仁。亦早歿無嗣。次男承祚。娶訓導愼準之女。生三男四女。男長曰眞㦂。次曰眞。次曰眞惷。眞㦂娶士人河世寶之女。女長適士人周國新。餘皆幼。
028_519a萬曆十三年乙酉七月日。門人進士鄭惟明。謹狀。

 

葛川先生文集卷之二
 
뢰溪先生公行狀 


公諱好仁。字克己。高靈縣人。曾大父諱白。軍器小監。大父諱。中領郞將。考諱。以處士終。年逾八旬。得階將仕。處士自長水娶李節女于咸陽。因家焉。正統乙丑。生公。公幼而聰睿。器宇天成。年纔逾紀。華聞已播。壬午。俱中司馬兩試。佔畢齋金先生爲郡倅。一見奇之。許以忘年。甲午捷科。補承文正字。以公名望素重。旋擢弘文正字。丙申。成廟命揀文臣。賜暇讀書。公與許琛,蔡壽,曺偉,權健,楊煕止實膺其選。世皆榮之。歷博士修撰。以親老乞養。乃拜居昌縣監。在縣三028_481b年。値武人爲方伯。所尙矛盾。居下考。成廟驚訝曰。好仁乃予經幄舊臣。爲人不宜至是。命訊其由。方伯難其對。以吟詩不輟。不顧民事爲辭。壬寅。丁內艱。服闋。拜典籍。轉工曹員外。乙巳。判書盧公公弼。遠接皇華于國界。公與木溪姜渾爲從事。有唱斯和。人咸服之。丙午。拜弘文校理。上設文臣都試。公爲第一。受表裏。謝恩日。上命製謝恩榮排律十二韻。公立就以進。上大加褒賞。公以母老辭職。拜義城縣令。上愛其才。命歲季錄所著以進。每覽。嘉嘆不已。嘗手書數句于御案以爲忼。且令監司賜米穀數十斛于028_481c其母。歲以爲常。秩滿。復入弘文爲校理。擢司憲府掌令。以母老且病。又乞歸養。上惜其去。與群臣議其允否。咸曰。好仁非徒才大。德邵年高。宜大用置左右。上曰。予意也。命召曰。予初愛汝。不欲遠離。今詢廷議。亦以爲然。當以予意。輦母來京。公承命。請母病不克行反命。上手札諭銓曹曰。好仁事君之日長。事親之日短。不可不從其志。特除晉州牧使。銓曹啓以晉牧未滿六期。爲好仁經除。有乖成憲。拜樂安郡守。公以遠辭。乃以陜川換之。在郡逾月。以疾卒。卽甲寅四月也。是歲二月。公在京師。夫人李氏。卒于咸陽之第。028_481d公哀悼過傷。頗損其精云。上聞訃震悼。命優賜賻物。俾克襄事。皆出於異數。其年冬。合窆于咸陽大匡之原。夫人考諱。敏道也。生二男三女。男長曰。壬子進士。次曰。幼歿。女長適朴叢。爲簽使。次適梁應麟。次適朴訥。庚午司馬。朴之適。㻑之歿。皆在公卒後。

 

뢰谿集卷之七
 
孫君墓誌銘
窆于智異山下養堂里之原。其孤昌。先以書走於靈川兪好仁曰。平生知孤者無如子。且子以文翰爲己任。편002先人者在子。敢請銘。

 

속동문선 제17권
 발(跋)
낙강 범주시 발(洛江泛舟詩跋)


유호인(兪好仁)

나는 정미년 봄에 의성(義城) 원이 되어 오고, 용휴(用休)는 기유년 봄에 잇달아 상주목사(商州牧使)가 되어 삼손망창(三飱莽蒼)의 사이에 낙동강 하나를 격하여 서로 바라고 있었으나, 각각 공무에 얽매어 한갓 편지로써 서로 물어온 적이 수년이었는데, 경술년 여름에 우연히 공무로 동도(東都)에 모이게 되어 나란히 말을 타고 함께 신성(新城)까지 와서 작별하였고, 또 금년 여름에 화산(花山)에서 시험을 치는 제생(諸生)들이 일을 끝마치는 날에 용휴을 강요하여 내가 관할하는 빙산(氷山)에서 노닐게 되어 반벽(半壁)의 등불아래 한 동이 술을 나누고 파하였으며, 그후 한 달이 채 못되어서 함께 겸선(兼善)상공(相公)을 함녕(咸寧)으로 방문하였는데, 나는 용휴에게 납치를 당하여 물구경하는 놀이를 이루게 되었으니, 그것은 아마도 지난날 빙산의 놀이를 보답하자는 뜻이었으리라.

      홍치(弘治) 신해년 6월 초10일 영천(靈川) 유 아무개 쓴다.

 

연려실기술 별집 제16권
 지리전고(地理典故)
주(州)와 군(郡)

○ 고령(高靈) : 본래 대가야국(大伽倻國)이니 신라가 차지하여 대가야군을 만들었다가 고령으로 고쳤다. ○ 고양(高陽)ㆍ영천(靈川)이라고도 한다. ○ 14면, 서울과의 거리는 6백 84리이다.

함양김씨:

안음서문씨:

錦谷集
宋來熙

安陰西門氏族譜重刊序

안음하씨:

高麗史節要 卷之十七
高宗安孝大王[四]
 
[己未四十六年 宋 開慶元年,蒙古 憲宗九年]
○二月登和州等諸城叛民,自稱官人,引蒙人來攻寒溪城,防護別監安洪敏,率夜別抄出擊,盡殲之。○判衛尉事河千旦,卒,千旦善屬文,事大表箋,多出其手。○燃燈,宴諸王宰樞,王再擧手以示群臣曰,凡赴宴者拍手以助予樂,酒闌王猶樂甚,群臣拍手踊躍,汗流被體,至暮乃罷。

史臣曰,國家自被兵以來,停燃燈宴,已六年,況今東北盡爲賊巢,西南浮寄海島,而道殣相望,倉廩罄竭,王當小心翼翼,宵衣旰食,仁政是施,武備是修,猶懼不保,慮不及此而耽樂之從,王旣衰老,視蔭愒日,固不足責矣,當時之待宴者,豈無一二有識者,而乃與王拍手助樂,如在大平之日,而無一言諫之,何哉。

高麗史節要 卷之十八
元宗順孝大王[一]
 
[庚申元年 宋 景定元年,蒙古 世祖 中統元年]

○秋七月蒙古,平,阿里不哥,遣使頒赦。○癸酉地震。○濟州獻馬,分賜四品以上。○追尊妣安惠王后柳氏,爲王太后。○門下侍郞平章事致仕崔滋,卒,滋初名安,崔怡,嘗品第朝士,以能文能吏,爲第一,文而不能吏,次之,吏而不能文,又次之,文吏俱不能,爲下,皆手疏屛風,每當銓注,輒考閱而敍之,滋名在下故,以學諭,十年不調。一日,怡,謂李奎報曰,誰可繼公秉文者,對曰,有學諭崔安者,及第金坵,其次也,時李儒,李百順,河千旦,李咸,任景肅,皆有文名,怡欲試其才,令製書表,使奎報第之,凡十選,滋五魁五副,遂超擢,代奎報,掌文柄,金仁俊等,擧義反正,滋,時爲冢宰,以淸嚴鎭俗。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1권
 경상도(慶尙道)
안음현(安陰縣)
『신증』【명환】본조 정여창(鄭汝昌)ㆍ문관(文瓘).
【인물】고려 하천(河千) 고종 때 사람이다. 성품이 솔직하고 문장을 잘하여 당시의 표문(表文)과 전문(箋文)은 모두 그의 솜씨에서 나왔다.
본조 임정(林整) 벼슬이 서경 도순문 찰리사(西京都巡問察理使)에 이르렀다. 임득정(林得禎) 정의 손자이다. 무예로써 현달하여 벼슬이 절도부사에 이르렀다.

 

동국이상국후집 제8권
 고율시(古律詩) 57수
우연히 봄눈을 읊조리다가 얻어진 장구시(長句詩) 이십육 운(韻)을 운각 학사(芸閣學士) 이수(李需)와 추부 낭중(秋部郞中) 하천단(河千旦)과 내성 기거(內省起居) 이순목(李淳牧)에게 보내다


어깨가 묶였으니 새벽 집에 쌓이는 것을 어찌하며 / 肩束那堪堆屋曉
꿈이 한창이어서 밤 창문을 때리는 것도 몰랐어라 / 夢酣不覺打窓宵
땅 위에 높고 낮게 쌓인 것만 알았으니 / 但知地上高低積
공중에 굵고 가늘게 나부끼는 것은 물어 무엇하리 / 休問空中巨細飄
문을 닫을 적엔 사뿐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 掩戶初聞聲屑屑
발을 걷을 적엔 소담한 은빛이 깔려 있네 / 卷簾方見色瀌瀌
납일(臘日) 전에는 바라지만 지금은 무슨 소용이며 / 臘前要白今何用
봄철에 추위 겹치는 것 이 뉘의 기승인가 / 春際交寒定孰驕
흥취가 일어나니 붓을 휘둘러 시를 쓰고 / 有興直揮詞筆狀
아무런 생각 없이 병풍도 그리고 싶네 / 無心欲作畫屛描
매화 동산에는 새 꽃받침이 한창이요 / 梅園正好和新萼
보리밭에는 매마른 싹을 손질해 주며 / 麥壟偏工潤枯苗
옷소매에 떨어질 적엔 바로 녹아 버리고 / 微黙袖端融旋滅
처마에 몰아칠 적엔 멀리 날아 가곤 하네 / 迫來簷畔去還遙
낮은 곳을 메우니 움푹한 데가 뾰족하고 / 塡卑已遣凹成凸
감은 눈을 번쩍 뜨니 저녁이 아침으로 착각되네 / 破瞑尋敎暮作朝
동곽은 다닐 때 맨발로 걸을 것이며 / 東郭行時全露足
조사가 섰던 곳엔 허리춤까지 닿았으리 / 祖師立處正齊腰
가로 새로 옥이 깔린 건 밭 사이요 / 橫縱種玉因田畝
삽시간에 꽃이 열린 건 나무 가지일세 / 頃刻開花賴樹條
어리석은 계집은 분가루 흩어졌나 의심하고 / 癡女誤疑役粉屑
고기잡이 늙은이는 은조수가 밀려왔나 두려워하네 / 漁翁爾恐起銀潮
싸우듯이 퍼붓는 기세 어찌 조금인들 양보하며 / 鬪相振觸何曾讓
춤추듯이 배회하는 맵시는 스스로 교태를 짓누나 / 舞或徘徊好自嬌
모양이 버들개지와 비슷하나 더 교묘함을 이루었고 / 絮幸同影成巧況
곡조가 난초와 짝하였으니 긴 노래를 부를 만하네 / 蘭能儷曲放長謠
이의 부는 양원서부터 지어졌다 하지만 / 早聞作賦由梁苑
시를 읊는 데 어찌 꼭 패교어야만 하나 / 何必吟詩獨灞橋
부유한 집에는 귀한 촉으로 밥을 짓지만 / 富宅猶將華燭㸑
빈궁한 부엌에는 젖은 섶을 때게 되며 / 窮廚方拾濕薪燒
텅 빈 집에는 가는 밀가루가 다행히 저축되었고 / 虛庭巧貯重羅麪
넓은 길에는 한 빛의 비단이 펀펀히 펼쳐졌네 / 坦路平鋪一色綃
바람이 서쪽에서 오면 동쪽으로 몰리고 / 風自西來東正蕩
해가 남쪽에서 비치면 북쪽이 먼저 녹으며 / 日從南炤北先消
해마다 빠지는 수염은 실처럼 헝클어졌고 / 洒鬚添却棼絲裊
옆으로 보이는 눈에는 허깨비처럼 아른거리네 / 傍眼兼他幻翳搖
낙양(洛陽)에 원안(袁安)을 찾았으나 쉬 일어나지 않았고 / 洛邑問袁猶自臥
섬계서 대규(戴逵)를 만나려 하였으니 누가 불렀던가 / 剡溪訪戴是誰招
노는 아이는 손이 시려도 뭉쳐 던지고 / 遊兒手冷團還擲
취한 사람은 목이 타므로 마구 움켜 씹누나 / 醉客喉焦嚼便澆
아늑한 방에서 화로불을 끼고 있는 사람이야 / 若校深房閑擁火
어찌 음산한 산길에 나무하는 사람과 비하겠으며 / 忍聞幽徑有擔樵
꿋꿋한 대나무는 맨 먼저 부러지게 되었지만 / 適遭孤竹能先折
소나무야 맨 나중에 시드는 절개를 어찌 변하랴 / 詎改貞松本後凋
묻노라 언 말을 몰아 가는 저 관인이여 / 爲問官人鞭凍馬
일 없는 늙은이 초구(貂裘)를 껴 입은거와 어떠하리 / 何如閑老襲重貂
새벽 구름에 뒤섞이니 햇빛이 어두워지고 / 晨雲混合光渾暗
저녁 바람에 몰아치니 위세가 대단하네 / 夕吹騰凌氣斗饒
날씨 개기 전에 쓸어 버리소 / 不待新晴須急掃
이대로 녹으면 어이 감당하리 / 及爲流沫可勝漂
이런 때야 오직 왕손의 집에서만이 / 此時唯有王孫第
화려한 방안에서 퉁소를 불고 있으리 / 羅綺香中吸洞簫


[주D-001]납일(臘日)……바라 : 이 구절은, 납일 전에 눈[雪]이 세 번 내리면 이듬해에 풍년이 들 징조로 삼는 데서 이른 말.
[주D-002]동곽(東郭) : 전국 시대에 은자(隱者)인 동곽자기(東郭子綦)를 말한다.
[주D-003]조사(祖師) : 선종(禪宗)의 제2조(祖) 혜가(慧可)를 이름. 그는 40세 때에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로 보리달마(菩提達磨)를 찾아가 눈[雪] 속에 앉아 가르침을 청하였음.
[주D-004]곡조가……짝하였으니 : 이 구절은 《송옥(宋玉)》풍부(諷賦)에 "신(臣)이 거문고를 치면서 유란백설(幽蘭白雪)의 곡(曲)을 부르겠다." 한 데서 인용된 말.
[주D-005]양원(梁苑) : 한(漢) 나라 양 효왕(梁孝王) 유무(劉武)의 동원(東苑)을 말한다. 효왕이 동원에서 눈이 올 때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시켜 부(賦)를 짓게 하였다.
[주D-006]패교(灞橋) : 장안(長安) 동쪽에 있는 패수(灞水)의 다리로, 버드나무가 많고 경치가 아름답다. 당(唐)의 정계(鄭綮)가 시를 잘하였는데 한 사람이 "상국(相國)은 요즈음 새로운 시를 얻었는가?" 묻자 그는 "시흥(詩興)은 패교에서 풍설(風雪)을 맞으며 나귀를 몰아가는 때라야 떠오른다. 어찌 이런 데서 될 법이나 할 말인가." 대답하였다.
[주D-007]텅 빈……밀가루 : 이 구절은 속석(束晳)의 면부(麪賦)에 "가는 밀가루가 눈[雪]처럼 날린다." 한 말을 인용하였다. 《문견후록(聞見後錄)》에는 "그의 집에서 밀가루를 가공하여 생계를 이어갔다." 하였다.
[주D-008]낙양(洛陽)에……않았고 : 이 구절은 후한(後漢) 원안(袁安)의 고사. 마침 큰 눈이 내려 길[丈]이 넘게 쌓였는데, 낙양 영(洛陽令)이 순찰 차 나왔다가 그의 문 앞에 당도해 보니 드나든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죽었으리라 여기며 사람을 시켜 눈을 치우고 들어가 보니, 그가 뻣뻣이 누워 있었다. "왜 나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큰 눈이 내려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었으니 나 혼자만 남에게 도움을 구할 수 없다." 대답하였다 한다.
[주D-009]섬계서……하였으니 : 이 구절은 진(晉) 나라 왕휘지(王徽之)의 고사. 그의 자는 자유(子猷)로, 눈 내리는 어느 날 밤에 섬계(剡溪)에 있는 대규(戴逵)가 불현듯 생각 나자, 배를 띄워 나섰다. 그러나 대규의 문 앞까지 당도하였다가 그냥 되돌아와 버렸다. 누가 그 까닭을 묻자 "흥이 나서 찾아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왔으니 그만이다. 어찌 꼭 만나보아야 하는가." 대답하였다 한다.

 

草澗先生文集卷之四
 大東韻玉凡例
大東韻玉凡例 


一。胡宗旦, 河千旦, 兪升旦。旦字犯我國諱。故皆以朝字代之。

안음

하동정씨:

一蠹先生續集卷之四
 附錄
世系源流 



氏其先。河東府人。先生曾王考宗簿寺正公之義。始居于咸陽郡。
先生七世祖國龍高麗高宗朝。密直副使。墓。河東府橫甫面鰕谷甲坐。有二子。芝衍,蘭衍。文左尹。芝衍。卽先生六世祖。
芝衍忠宣王朝。都僉議贊成事。諡文忠。墓。考墓右麓甲坐。配郡夫人李氏。墓祔。有二子。翊。贈判書。宥。。卽先生五世祖。

015_541b樞密院副使。墓失傳。有二子。堅,賢。。卽先生高祖。
版圖判書。墓失傳。有一子。之義。之義。卽先生曾祖。
之義宗簿寺正。墓郡南晦洞子坐。配寶城宣氏。司諫一德之女。有一子復周。復周。卽先生王父。
復周號竹堂。典農寺判事。以孝旌閭。道學享道谷院。墓。郡南血溪乾坐。配。郡夫人載寧李氏。墓失傳。配。郡夫人江陽李氏。墓。郡北釜夜辛坐。有一子。六乙。六乙。卽先生皇考。
六乙國史。乙作一。我世祖丁亥。以咸吉道虞侯。立殣於賊臣施愛亂。贈漢城府左尹。墓。郡東昇安沙岡丑坐。配貞夫人慶州氏。牧使孝孫女。墓。昇安竹岡子坐。有三子。汝昌。汝裕。縣監。無后。汝寬。參奉。生二子。希顏。文都事。希參。縣監。縣監生二子。善男,彥男。彥男015_541c系從叔希卨后。汝昌。卽先生。 先生事蹟。載在國朝儒先錄及事實大略。墓。昇安考墓左麓艮坐。配。貞敬夫人完山李氏。桃平君末生女。定宗大王孫。墓。公墓上艮坐。
繁不盡錄。故止於十世。而但書宗系。
先生有二子。希稷, 直長。嫡無嗣。只有庶子如山。四世大宗。不可傳於庶孼。臨終。托宗祀於弟希卨。希卨。 正郞。系子彥男。
孫彥男, 希卨子。同中樞。生父希參。宣祖丁酉。同郭䞭,趙宗道。殉於黃石山城。子大民。庶子秀民如山。 希稷子。贈參議。子天壽,桂壽,萬壽,德壽。
曾孫大民, 彥男子。蔭縣監。子弘緖。秀民, 彥男子。師事寒岡鄭先生。以學行薦。除參奉。享道谷院。子弘纘,弘繼,弘經。天壽, 如山子。子元禮,亨禮。桂壽, 如山子。子興禮,仲禮。萬壽, 如山子。无后。德壽。 如山子。无后。

015_541d玄孫弘緖, 大民子。蔭參奉。文學正。師事寒岡鄭先生。光海朝。如山之孫元禮。諂附仁弘,爾瞻。作奪宗之變。仁祖改玉元年。上疏歸正。以道義。享蘫溪別祠。子光漢,光淵。庶子光潤。弘纘, 秀民子。无后。弘繼, 秀民子。无后。弘經, 秀民子。贈掌隷院判決事。子光淑,光湜,光渭,光濂。元禮, 天壽子。都事。子時豪,時俊。亨禮。 天壽子。子時雲,時遇。興禮, 桂壽子。都事。子光澈。仲禮。 桂壽子。進士,參奉。子光仁。
五世孫光漢, 弘緖子。進士。薰陶先業。事親至誠。涉獵經史。文章卓犖。子世杓。光淵, 弘緖子。進士。仁祖乙亥。選入太學。同宋時瑩疏請栗,牛兩先生從祀。被出於嶺外。孝宗乙未。以館學薦。除察訪。子世模,世楨。庶子世檍。光淑, 弘經子。无后。光湜, 弘經子。贈左尹。子祖文述文。光渭, 弘經子。子世檜。光濂, 弘經子。无后。時豪, 元禮子。无后。時俊, 元禮子。宣務郞。子弼聖,弼君。時雲, 亨禮子。无015_542a后。時遇, 亨禮子光澈, 興禮子。子世彬,世休,世來。光仁。 仲禮子。通政。子龍。
六世孫世杓, 光漢子。蔭縣監。子煕章,煕載,煕文。庶子煕瞻。世模, 光淵子。進士。子道兼。庶子逸兼。世楨, 光淵子。子煕道,煕運。世檍, 光淵子。子煕遠,煕普。祖文, 光湜子。同中樞。子煕泰。述文, 光湜子。贈軍資監正。子煕福,煕祿。世檜,光渭子。子煕錫。弼聖, 時俊子。子贇,斒出系。斕出系。弼君, 時俊子。系子斒。世彬, 光澈子。參奉。子東里。世休, 光澈子。子是豪。世來, 光澈子。系子斕。龍。 光仁子。子貴哲。
七世孫煕章, 世杓子。蔭察訪。子胤獻,宗獻。煕載, 世杓子。子述獻,纘獻。煕文, 世杓子。子承獻。道兼, 世模子。子恒基。逸兼, 世模子。子壽獻。煕道, 世楨015_542b子。子履基,益基,紹獻。煕運, 世楨子。以行義薦。除參奉。英祖戊申。亮亂倡義。以忠義命旌閭。子重獻,尙獻,師獻,祖獻,志獻,孝獻。庶子後獻,敬獻。煕遠, 世檍子。子起獻。煕普, 世檍子。子有獻。煕泰, 祖文子。子一獻。煕福, 述文子。系子大獻。煕祿,述文子。子大獻。出系。再獻,赫獻。贇, 弼聖子。文禮曹佐郞。子河龍,河瑞。斒, 弼君子。生父弼聖。子河憲。東里, 世彬子。文判官。子維宗,維楨,維幹,維城。是豪, 世休子。子東河,宗河。斕, 世來子。生父弼聖。子河鵾。貴哲。 龍子。子河望,河碩,河雲。
八世孫胤獻, 煕章子。蔭縣監。戊申。亮亂倡義。以忠義贈吏議。命旌閭。系子鎭華宗獻, 煕章子。子鎭壽,鎭禧,鎭祿。述獻煕載子。子鎭厚,鎭泰。纘獻, 煕載子。亮亂倡義。命旌閭。子鎭華出系。鎭恒。鎭衡出系。承獻, 煕文子。亮亂倡義。命旌閭。子鎭垈,鎭福。恒基, 道兼子。系子鎭圭。壽獻, 逸兼子。子鎭豪,鎭杰。履基,015_542c煕道子。系子鎭一。益基, 煕道子。系子鎭衡。紹獻, 煕道子。亮亂倡義。命旌閭。子鎭一。出系。重獻, 煕運子。亮亂倡義。命旌閭。子鎭成。尙獻, 煕運子。亮亂倡義。命旌閭。子鎭緯。出系。鎭權,鎭維,鎭綱。師獻, 煕運子。亮亂倡義。命旌閭。系子鎭緯。祖獻, 煕運子。子鎭望。志獻, 煕運子。子鎭鼎,鎭宅。孝獻, 煕運子。子鎭普。鎭圭出系。後獻, 煕運子。子鎭邦。敬獻, 煕運子。子鎭臣。起獻, 煕遠子。子鎭箕。有獻, 煕普子。子鎭億,鎭賢,鎭璧,鎭甲,鎭烈。一獻, 煕泰子。子鎭赫,鎭彥,鎭極。大獻,煕福子。生父煕祿。子鎭南,鎭八。再獻, 煕祿子。子鎭源。赫獻, 煕祿子。子鎭喆,鎭相,鎭淑。河龍, 贇子。子鎭喆,命喆。河瑞, 贇子。判官。子文喆,國喆。維宗, 東里子。子邦式,邦龍。維楨, 東里子。子邦憲,邦彥,邦翰,邦桓。維幹, 東里子。子邦赫。維城, 東里子。子邦弼。河鵾。 斕子。子邦祚。

015_542d九世孫鎭華, 胤獻子。蔭奉事。生父纘獻。子德濟。鎭壽, 宗獻子。系子德渾。鎭禧, 宗獻子。子德渾。出系。系子德奎。庶子德洧。鎭祿, 宗獻子。子德河。進士。德奎出系。鎭厚, 述獻子。亮亂倡義。命旌閭。系子德洙。鎭泰, 述獻子。子德洙。出系。德淳出系。德浚。鎭恒, 纘獻子。系子德澄。鎭岱, 承獻子。系子德淳。鎭福, 承獻子。子德濡。鎭圭, 恒基子。生父孝獻。子德澮。鎭豪, 壽獻子。子德泳,德涵。鎭杰,壽獻子。子德泗。鎭一, 履基子。生父紹獻。子德演。鎭衡, 益基子。生父纘獻。子德澄,德澈。鎭成, 重獻子。子德浩。鎭經, 尙獻子。子德汶。鎭緯, 師獻子。生父尙獻。子德溵。鎭望, 祖獻子。子德洛,德濂,德泓,德溫,德和,德基。鎭鼎, 志獻子。子德源。鎭宅, 志獻子。系子德洤。鎭普, 孝獻子。子德海。鎭邦, 後獻子。子德滿。鎭箕,起獻子。子德函,德永,德明。鎭賢, 有獻子。系子德壹。鎭甲, 有獻子。子德佑。015_543a烈, 有獻子。子德漳。德壹出系。德泰,德七。鎭赫, 一獻子。子德裕。鎭彥, 一獻子。德沇,德瀅。鎭極, 一獻子。子德沾。鎭南, 大獻子。系子德洪。鎭八, 大獻子。進士同中樞。子德洪出系。德玄進士。德注。鎭源, 再獻子。子德滂,德泮,德一。鎭喆,赫獻子。子德淵。德溶出系。鎭相, 赫獻子。系子德溶。鎭淑, 赫獻子。贈戶參。子德儉。以孝贈敎官。德誼。同中樞。鎭喆, 河龍子。子道彥。命喆, 河龍子。系子道興。文喆, 河瑞子。贈都事。子道宅,道弘。國喆, 河瑞子。子道淵,道化。邦式,維宗子。子道貫,道南。邦龍, 維宗子。无后。邦憲, 維楨子。子道一。邦彥, 維楨子。子道顯。邦翰, 維楨子。子道亨,道明。邦桓, 維楨子。无后。邦赫, 維幹子。子道敏,道晉。邦弼, 維城子。子道重。邦祚。 河鵾子。子德源。
十世孫德濟。 鎭華子。蔭縣監。子東老。東民。進參奉。東蓍。以孝贈監察。東耇,東翊。015_543b庶子東運,東彥。
十一世孫東老。 德濟子。蔭縣監。子煥輔。煥義文承旨。煥禮。煥祖進士。煥弼進士。
十二世孫煥輔。 東老子。進士。蔭參奉。子在箕,在斗。庶子在翼監役。在煕武部將。
十三世孫在箕。 煥輔子。蔭郡守。子直鉉。國鉉文應敎。庶子鳳鉉檢書。
十四世孫直鉉。 在箕子。進士。蔭參奉。系子淳元。庶子淳宅學官。
十五世孫淳元。 直鉉子。進士。文直閣。生父圭鉉參奉。祖在復。曾祖煥球。高祖監察東蓍。系子近相。
十六世孫近相。 淳元子。生父淳圭。祖麒鉉。曾祖在修。高祖煥禮。子炳鎬。

풍천노씨:

葛川先生文集卷之二
 
玉溪公行狀 


公姓氏。諱示+眞。字子膺。自號則庵。又號玉溪。其先黃海道豐川人。遠祖國子進士諱。始顯於世。自是世不乏官閥。麗季。移于慶尙道昌原府。又徙于咸陽郡028_483c有諱叔仝。早登科。有文學淸望。英廟朝。常在集賢殿。官至禮曹參判。卽公之曾祖考也。有子曰盼繼。有才學。再捷科。官至藝文館校理。早卒。以公之貴。贈禮曹參判。卽公之祖考也。校理有三子。俱以學行。名著士林。其仲諱友明。卽公之考也。早擧進士。不屑科第。性稟貞潔。志尙高古。名其堂曰信古。其志也。慕齋文敬公當道。與盧,安遇。竝聞于朝。除顯陵參奉。不幸早歿。今贈資憲大夫吏曹判書。亦公之貴也。信古公合巹于生員權時敏之女。權卽安東大姓也。

公之配。順興安氏。奉常寺判官諱處順028_488c之女也。判官公。己卯名流也。號思齊堂。孝義之行。爲一世推重。夫人克遵家訓。佐公無違德。事親盡其誠。得婦道甚。先公十一年卒。生子七人女二人。男長士訓。啓功郞氷庫別檢。次士誨。次士訢。次士諤。次士詮。訢,諤,詮。皆夭。次士詹。次士諗。女長適柳起。夭。次適許成弼。士訓娶濬源殿參奉趙堰之女。生一男一女。皆幼。士誨娶宣務郞柳疑之女。生二男二女。幼。士訢娶趙完之女。生一男。幼。士詹娶持平朴光玉之女。士諗。幼。今其諸孤將請諡于大常。且欲托碑詞于立言之君子。以薰爲知公。囑以撰次公之行跡。薰以편001線。何足以發潛德之幽光。謹以平日見而知之者。爲之評騭云

남원양씨:

西堂私載卷之八
 墓碣銘
吏曹參判贈吏曹判書梁公墓碣銘 


出耽羅。上世有三神人。曰良。曰高。曰夫。皆以乙那爲名。186_403a鼎峙立國。至後世。通好新羅。改良爲梁。賜貫南原。自是爲南原人。公遠祖諱朱雲。仕麗朝。爲太子中允。封龍城君。其後若修文殿學士文節公思道,右政丞忠敏公宜生。皆著名德。光于史策。入我朝。有諱。知珍山郡事。是爲公高祖。曾祖諱川至。作家訓以敎子孫。祖諱。同知敦寧府事。成廟甞賜御札。褒其廉白。號逸老堂。考諱應鯤。用薦。官至司편001寺僉正贈戶曹參判。妣贈貞夫人晉州姜氏。成均館典籍贈禮曹判書文會女。公諱喜字懼而。自號九拙庵。幼聡慧異凡兒。及長。與盧玉溪禛,李靑蓮後白。相切磋爲學。時稱天嶺三傑。庚子。中司馬一等。丙午。又擢文科。時權奸當186_403b國。淸流不能見容。公亦斂避名塗。屢求外出。歷典三邑。至康陵。末年。始自金海任所。承召還朝。敭歷臺省。其立朝。言論必多可觀者。而年代寢遠。文籍散亡。至於官職所歷。亦無所考。惟就見於遺稿者。畧記其一二焉。內則兩司吏兵曹知製敎,掌樂正,承旨,諫長,判决事兼金吾。外則忠淸,慶尙都事,益山,金海,楊州,義州,安東,坡州。萬曆庚辰。以冬至進賀使。朝京師。十一月二十三日。病沒于玉河館。春秋六十六。臨絶之語。唯以未報國恩爲恨。不及其私。訃聞。皇帝惻然。賻賜甚厚。遣禮部侍郞河洛。賜祭。其文曰。文章節義。東表之英。肅將使命。來覲闕庭。季子觀周。德禮修考。盡瘁186_403c長終。良深感悼。本朝致祭文。亦有病不忘君。言不及私之語。盖紀實也。辛巳。葬于咸陽郡治北牛山下艮向之原。公少孤。能自力爲學。大夫人性嚴。其敎公。不以愛而弛。公克承克循。不敢或違。及居憂。啜粥哀毁。幾不獲全。位列卿宰。而淸貧如寒士。甞搆少齋。扁以九拙。啚書松竹。列置內外。題詩以詠。九拙之意。謂性拙貌拙言拙文拙官拙政拙與朋友交拙爲身謀拙爲子孫計拙也。栗谷李先生。亦有詩贊其高。自少好讀書。尤深於易。吳德溪健聞名遠訪。遂結道義之契。文詞富麗。詩尤淸新。甞有詠梅詩。其一聯云雪打吟唇詩欲凍。花飄歌扇曲生香。人皆傳誦。所著述盡逸186_403d於兵燹。只若干篇。藏于家。夫人豊川盧氏。參奉友奭女。有一女。適士人權世臣。繼夫人星州李氏。學生延年女。後公一年辛巳五月卒。祔葬公墓。有三男三女。男長弘澍。義禁府都事。次弘溥。次弘浚。女長適鄭仁弘。次適監察李汝儉。次適全時暘。肅庙辛巳。咸陽多士議建書院於逸老堂遺址。以公及姜琴齋漢편002溪沿沫,李靑蓮後白腏享。而朝廷亦以公死於王事。贈吏曹判書。兼帶如例。公之潛德翳光。於是乎昭著無遺憾矣。始公之孫佐郞。宰南邑。規爲公繫牲之石。是伐是琢。未卒役而病沒。石埋墓下。旋失其處。頃年潦雨崖崩。其石自出。人皆異之。今公七世孫參186_404a議君廷虎。以其曾王考敎官公諱錫九所爲狀。眎余。求爲隧道之銘。余於參議君。從遊有年。義不可辭。遂按狀。序而銘曰。
一拙亦可。奚九之多。唯其多有。善莫之加。淳白旣化。穰穰殺機。梔蠟言貌。俳優文辭。刑名爲聖。華膴競規。勢利有交。臭若芝蘭。身占便宜。業務子孫。了此一世。惟巧之溺。公唯反是。所以爲拙。巧之窮矣。或麗于菑。拙常有裕。冥乎物始。彼巧反拙。此拙乃巧。銘以牗迷。來者宜曉。

 

南溪先生朴文純公文續集卷第二十一
 墓碣銘
義禁府都事梁公墓碣銘 八月二十六日 


142_492b梁僉樞錫九。舊要也。間訪余于金谷。屬以曾王父都事公墓文曰。先祖言行靡不聞。顧因聯世早孤。其存者無幾。幸惠一言。余謹諾。至去年冬病歿於漢師。旣葬。孫聖揆以治命申屬。其忍負諸。按狀公諱弘澍字大霖號西溪。其先耽羅人。徙籍帶方府。世載勳閥。曾祖諱。同知敦寧府。有淸白操。成廟褒以御札。祖諱應鯤。司導僉正贈參判。考諱。吏曹參判。雅尙儒術。著聲薦紳間。奉使卒于帝京。天子愍之。哀齎有加。妣星州李氏。父曰延年。公以嘉靖庚戌十一月二十三日生。生質儁異。少承訓家庭。慕古人直截142_492c之風。旣而游事南冥曹文貞公。往來扣疑。識博行篤。其於斯學已躍如也。會隣邑有祠賢禮。遠近章甫大會。公適掌其事。節文儀度。靡不得宜。觀者聳歎。時年蓋十九歲。玉溪盧公禛參判公友也。亦曰某甫有子矣。其進未可量。間入京城。參判公出守坡州。公遂從牛溪成先生爲師友。益致講習。所與交皆名人善士。嘗慨然曰正學與俗學。其分在於理欲善利之際。惟當講究義理。涵養德性。以致吾志耳。嘗別作心性情圖玩索久之。尤深於易。人多就問。玉溪亦往往爲之相討。公悉卞對。玉溪益服。萬曆庚辰參判公輀車返142_492d自燕山。公號哭奔迎於灣上。歸葬故山咸陽。明年大夫人繼歿。凡喪制一依文公家禮。兼行廬墓之制。克盡情文。鄕黨稱歎。壬辰倭奴入寇。公痛曰吾雖布衣。世受國恩。今聞君父播越。豈可晏然而已乎。謀起義師。時鄭仁弘已爲嶺南大將。統列邑兵。公不欲受其節制。遂付所領衆於金公誠一。用伯子計。傾財破家。以備長片箭三百部箭竹四萬箇。由木道奔問行在。宣廟大嘉之。明年癸巳。天朝大將軍李如松帥我國兵擊破平壤賊。乃用公所獻箭以取勝焉。十月扈駕還都。始歸鄕。會除義禁府都事。謝恩142_493a訖。不仕。未幾首相柳公成龍及金公命元。白公亂初越海勤王狀。忠義卓然。願賜旌褒。上屢加嗟歎。遂下銓部議處。俄除慶基殿參奉亦不終仕。自後累除璿源殿,恭陵,順陵諸官及金吾郞。或拜或不拜。蓋非素志也。時有錄公勳籍之議。値婦黨李公好閔主管勘定。公力辭遂已。竟以庚戌九月二十二日疾卒。年六十有一。葬于楊州治東博達里坤向之原。公胚胎名家。委己正學。師友諸老先生。自樹於忠義大節。終身不肯苟祿。則固已見其本末矣。惟是天性正直。好善疾惡。未嘗少饒。務極兩端而後已。不142_493b幸仁弘與公爲姊壻。亦事南冥。蚤竊虛名。擧世亡不被瞞。公獨覰其心術。必貽異日宗國禍。會値天眷漸隆。朝夕爰立。遂倣朱溪君故事。上書累萬餘言。痛斤之。時不惟奸黨鬨然請罪。雖平日相好者。多疑以挾私逞憾。而公愈自信。及其末流披倡凶國斁倫。伏刑都市。然後人始大服。守夢鄭公曄至引先見不如呂誨語以奬之。當宣廟末。黨議方盛。惟事誣毀牛,栗兩先生。公常憤慨。迨避兵仁同。有贈張旅軒顯光,朴處士遂一文曰。時輩不知兩賢道德。聞其名。辭氣輒不平。捏空駕虛。略無忌憚。然若宇內事定。儒敎蔚142_493c興。議配文廟者。兩賢必與其間。德晦,誠伯果能於此脫灑否。苟不能然。使士論不公。彌甚。得無爲天下後世笑乎。光海初。奸黨得志。益肆醜詆。公嘗病申晩退應榘諸公訟師冤不明。至是欲露章申卞。屬草藁才訖。疾革不果上。未幾仁孝二聖繼作。腏享之擧雖掣異議。其道實大行於東方。可見公疾邪尊賢始終晢然也。配延安李氏。縣監贈掌令師閔之女。生二男四女。男長卽勸公航海赴義者。文學罕世早歿。次佐郞。女適吉云範權潗掌令,郭容,尹時俊都事。內外曾玄總數十餘人。銘曰。
142_493d世必有非常之士。然後必有非常之事。若公執徐之樹立。夫豈非千古君臣之大義。賢邪旣辨。其志益白。爰揭盛烈。庶幾永久而無斁。
南溪先生朴文純公文續集卷第二十一

진주강씨:

介庵先生文集下
 附錄
行狀 


先生姓姜。諱翼。字仲輔。其先晉州人。高麗國子博士啓庸之後。衣纓袞袞。累代不絶。曾祖諱利敬。縣監。祖諱。縣監。考諱謹友。承仕郞。妣南原梁氏。麗朝太子中允朱雲之後。參判逸老堂灌之孫。承仕郞應麒之女。以嘉靖二年癸未正月十八日乙亥。生先生于感陽郡東之孝友村舊第。先生生有異質。頭角嶄然。雙曈烱然。見者知其爲非常兒。一日。漢人善相者過曰。他日大明斯文。爲吾道表的者。必此兒也。己丑。先生年纔七八歲。豪邁不羈。不肯折節讀書。而承仕公。愛038_222d其超悟。不嚴其敎督。辛卯。母夫人患痢。先生嘗糞甘苦。夜則焚香禱于北辰。人咸異之曰。孝哉此兒。丁酉。先生宿痾有效。承仕公曰。人而不學。無異禽獸。奈何甘與蠢蠢者同歸。先生瞿然執書。就學於同閈唐谷老人鄭斯文希輔之門。其門學從。如盧玉溪禛, 梁九拙喜, 李靑蓮後白。皆先進也。以詞翰理致相高。見先生。笑其晩。唐谷試敎以史。句讀分明。讀聲琅琅。有若宿業者然。唐谷竦然曰。爲他日大儒。必此人也。因語門徒曰。勿以爲後進。當師表諸君。門徒自此加敬。先生激昂自奮。終日危坐。忘寢與食。讀誦不怠。纔授一038_223a卷。文理通達。凡經傳百家。觸處豁然。自是。不復從師。只拈出微奧之難曉者就正焉。唐谷見必改容。戊戌。先生學業大進。著作精敏。一日。嘗曰。士之爲學。豈獨時文而已。子夏曰。古之學者爲己。今之學者爲人。士之志學者。當爲己乎。爲人乎。自是。閉門端坐。左右書史。夙夜不怠。仰讀俯思。而喚醒斂飭於心身內外之間者。已得其端的焉。己亥。先生動靜有則。語默合道。儼然一老成君子。唐谷亟稱曰。龍之飛。鳳之鳴。固不待習熟而能。此子之變化氣質。若是之速也。庚子。事親至孝。定省而退。必與小奚。議其甘旨之有無。或不038_223b繼則憂之。躬自供進。壬寅。聞南冥曺先生之風。欲承函文之誨。而承仕公有疾。未果。癸卯。承仕公久病未效。先生晝夜侍側。衣不脫帶。夜則禱于北辰。願以身代。對人語。必流涕。人莫不感歎。甲辰。丁承仕公憂。哀毁踰制。絶而復甦。旣葬。盧于墓側。省問慈闈之外。足迹未嘗離於几筵。几送終之禮。葬祭之節。一以朱文公爲法。鄕鄰咸服其孝。丙午。服闋。皇皇如有永而不得。每欲謝世幽栖。以養其志。戊申。築小齋于宅南。扁曰夙夜齋。篤行益苦。每鷄鳴。整衣冠。先謁家廟。次省母夫人。出就齋。危坐讀書。有若泥塑人然。自號松庵。己038_223c酉。以母夫人命。中進士。與伯兄參同榜。是年。金東岡宇顒, 吳德溪健。共訪于夙夜齋。留數月。硏詩書史。許爲知心之友。庚戌。遂廢擧業。專以讀書求志爲事。而奉養孀母。左右無方。每於定省之際。從容侍坐。歷陳古今嘉言善行。冀其聞而喜悅焉。舅氏梁公悅居與之近。朝夕必省拜。而在書樓。聞其語聲。必起敬。認其出外。必下樓拱手。以俟其過。辛亥。南冥先生遊花林洞。聞先生之賢。歷訪仍與同遊於花林。是時。盧玉溪, 吳德溪。亦與俱焉。壬子。以興起斯文。倡明儒敎爲己任。一日。與朴君承任, 盧徙庵棵, 鄭梅村復顯, 林君希038_223d議曰。吾鄕乃文獻公之鄕。而文獻公之沒。已至五十年。尙無建院立祀之擧。實吾鄕之羞也。乃創立文獻公書院。是時。我東方書院。竹溪之外無有焉。見聞未熟。異議橫生。先生毅然不動。決意擧役。鄕之儒生。爭致米穀。隣邑之出米助役者亦衆。郡守乃徐侯九淵也。雅敬重先生。尙其所爲。出力相助。旣立講堂。而徐侯遞去。時又不稔。繼之者更不及徐侯之盡心。故遂停其役。殖其餘財。以待豐贍而後。訖功焉。癸丑。與吳德溪健。同遊智異山而還。是行也。得智異北麓之一洞。名曰登龜。愛其宅幽而勢阻。買田結茅。以爲終老038_224a之訃。別搆一小齋。扁曰養眞。凡梅竹蘭菊之屬。皆手植左右。而靜養性靈。嘉遯永貞。遠近學者。聞風坌集。爭問業焉。甲寅。入德川洞。謁曹先生。留數月而還。曹先生論學。語及鮮克有終。深歎今之學者不克有終。因曰。吾平生見欺於人多矣。的然相信。而保無可疑者。惟吾子一人而已。乙卯。金東岡宇顒訪于養眞齋。共論大學。先生曰。書豈有不可曉者。古人爲文。皆有其理。泝理而求之。自無難處。丙辰。又號介庵。日以誘掖後進爲任。學者踵門如市。一日。吳德溪健, 林葛川薰。冒靈同訪。先生以詩謝之。論學至自得勉强等語。038_224b乃曰。學貴自得。非自得者。易至差失。事在勉强。非勉强。則無以成功。二先生服其得道。丁巳。聞退溪李先生之道德純粹。欲摳衣趨學。而以伯兄進士公有疾。未果焉。戊午。學易于南冥曹先生而歸。歷訪吳德溪。德溪是年。釋褐而始至焉。己未。尹侯確來守。雅聞先生之賢。旣下車。趨拜于養眞齋。先生因語及院役。尹侯曰。敢不盡力於斯文上事乎。始克完役。光大其堂。繚繞以墻。而庫庾庖湢。無不就成。又度作廟宇於堂之東丘。庚申。嘗與諸生論道於養眞齋時當仲秋。月色如練。忽發興長歎曰。淸夜如此。豈復有一塵之汚耶。038_224c人當洗心靜慮。政如此夜而後。可以爲人。因咏邵堯夫淸夜吟一絶。辛酉。院役就完。大會儒士。奉安文獻公位版。士林拭目曰。自此。斯文不墜。吾黨知所歸矣。自是。遠方士子之承學者駢至。乃定通讀之規。每月朔。會諸生於院。執經辨論。士多有成就者。癸亥。養眞齋之南數十步。築一亭。植綠槐。扁曰風咏。斷崖如削。楓林躑躅。高低掩映。一帶石川。澄泓可愛。每與諸生。咏歸其上。甲子。金侯宇弘爲郡。先訪先生。相與契許最深。乃與金侯相議。更建書院之東西齋舍。齋下左右。鑿小池。池邊植梅竹有次。池中種紅白蓮花。堂齋038_224d儼然。階砌整整可觀。曹梅庵溥。素以筆名世。先生乃使書大字扁其堂曰明誠。其左右室曰居敬, 集義。其東西齋曰養正輔仁。其齋軒曰愛蓮咏梅。其大門曰遵道。請于方伯。得四邑食鹽, 兩郡魚醢, 三條漁基。永屬於院。乙丑。先生大懼無以養育人材。以盧徙庵裸。掌備書之任。以梁竹庵弘澤。典裒寶之責。二公終始協心。克有成就書。秩凡百餘養。財穀有裕於供士。先生乃與玉溪九拙兩先生定議。分院財之餘。各授境中洞內及書堂。使之各助其婚喪。而春秋行講信禮。遂爲一鄕定式。隆慶丁卯。德溪吳先生。薦先生學行038_225a于朝。除昭格署參奉。先生養志求道。不喜仕進。而以家貧親老。將理肅行。忽感疾。易簀于正寢。寔十月之二日甲申也。享年四十有五。當其疾革。有一條紫氣若長繩。自空中垂接于屋上。迨其屬纊。其氣漸收。薄天而滅。見者異之。以爲哲人之亡。天其視異乎。遠近聞訃。莫不攬涕相弔。是年十二月。卜葬于立名洞酉向之原。承仕公之兆側也。葬之日。遠邇章甫。聚首來哭。鄕里老少。處處執紼而呼之曰。善人沒矣。天何忍也。萬曆辛巳。鄕人立祠廟以享之。嗚呼。先生天資高明。城府坦蕩。氣宇峻拔。鬚髯秀美。喜怒不形於色。038_225b是非不出於口。而沈潛靜默。動遵古人繩墨。不喜麴孼。不近聲色。而一切世味。淡泊如也。其守己也簡而重。其接人也和而嚴。事親則以養志爲先。而不以一毫非義逆其心。刑家則以禮敬爲務。而不以俚近鄙野亂其儀。處鄕而恂恂。亦不必苟同於人。睦族而由由。未嘗有暌異於心。至其爲學。則無所師承而自能奮發超悟。寤寐伊洛之學。探賾性命之原。玩心高明。而冥悟夫圖象之玄微。飭躬謹嚴。而允蹈乎賢聖之軌躅。古書之盤錯。人所難曉。而一經於目。刃迎縷解。事理之精微。人所未透。而人或有問。剖決無疑。從事格038_225c致。而盡精思明辨之功。用力誠正。而極精詣深造之妙。表裏文養。酬酢合宜。根心喩體。色夷氣淸。望之可畏。卽之可愛。人無賢不肖。一見莫不有以感發興起。而終無怨惡之者。詩之在彼無惡。在此無斁者。正先生謂也。先生與盧玉溪禛, 吳德溪健, 金東岡宇顒。許爲道義之交。而往來切磋。互祖椎重。蓋先生之於爲學。非但天質粹美。依本分做底。其克養之功。磋磨之益。亦可尙已。玉溪以文哭之曰。屛居求志。占人是希。身蹈繩約。思徹玄微。稽經觀書。默契心會。雖遇肯綮。迎刃而解。一簞一瓢。其守愈確。和而實介。物莫之奪。038_225d犯而不校。人孰涯涘。德宇醇如。可敦薄鄙。孝友行全。疇克倫比。東岡亦哭以文曰。程朱沒而微言絶。關婺墟而大道隱。此道之托。不過乎文字口耳。而異端之學。又不勝其紛縕。士生斯世。非有卓然之高識。則孰能特立而不惑。又曰。閉門自守。味衆人所不味。斯非豪傑之士不待文王而興者歟。余求友於斯世。蓋所取之多方。而學之正守之固。未有如夫子之淳篤。又曰。弘哉其執德之廣。毅乎其任道之力。誾誾其取善之量。切切其文會之益。則其積於內者深而厚。所以著於外者朴以茂。脚踏平實。雖不爲崖岸嶄絶之行。038_226a而存心不苟。隱然爲濁世之砥柱。嗚呼。先生如許之才之德。達而在上。則可展所學。而試經綸於斯世矣。惜乎天不假年。奪之斯速。道旣不行於當時。而言又不暇於垂後。遺風餘馥。雖足以立懦於百世之下。豈非斯道之深痛也哉。先生不喜著述。而其或遇興而吟。因事而纂。亦未知多小。而散失無餘。今其所存。詩若書記若干篇而已。顧非後學之感慨也耶。先生娶草溪卞氏參奉潤源之女。府尹孝文之曾孫。生三男三女。長曰渭英。次曰渭賢。次曰渭明。渭英娶士人李琢女。生一子。曰渭賢娶生員金瓛女。生二子。曰紭, 038_226b。渭明娶主簿吳珪女。女長。適士人孫光顯。無后。次適士人愼誼。無后。次適士人林眞慜。生一子。幼。萬曆二十四年丙申二月上澣。從子渭琇。謹識。

언양김씨:

안동권씨:

謙齋先生文集卷之八
 丘墓文
軍資監直長公安人氏合祔墓表 公季子 


嗚呼。是我考妣墓也。府君諱克義。字宜伯。貫安東。先097_138c姓金。本出駕洛國王後。至諱。麗祖賜姓權。官號太師亞父。與殷帝子降封權爲氏異。于後赫世冠冕。至一家九封君。有奉事諱金錫。娶麗季侍中忠義伯圃隱先生甥孫壻校勘金慶孫女。生諱時敏。生員。生諱。戶部郞中。生諱汝訥。有才行不占第。是生諱。篤學力行。善文隷。早卒。公世居安陰。娶校理朴孟智曾孫贈少秋官諱承男女。生府君。十七。娶豐川盧氏。五世祖諱叔仝。御史大夫。封淸白吏。有藝文校理諱。永慶殿參奉。諱友英。不仕。諱。司宰監僉正。諱士忠。寔先妣高曾祖考。妣河氏也。府君早孤。又遭亂失學。097_138d丁酉。受武功爵。徙秦道北村。能事親無違。作事周詳。鄕人稱孝而推重。先妣柔嘉淑明。奉皇姑誠至。接宗戚貞信。至婢僕絶無詬詈。人多感德。宜家以睦。蓋風自火出也。府君年六十九。以戊子元日終。三月二十七日。葬于家居左壟之卯坐原。先妣後十年。年八十四。正月二十日歿。三月十七日。祔于府君封。有子三男四女。曰得衡早歿。以萬基嗣。曰銑。男三女一。長萬綱。次夭。次應璧。女幼。曰鏞。男三女二。長萬▣。餘幼。長女壻河弘度。敎官。次趙汝。士人。忠義衛鄭潝鄭間藩。又次也。不肖孤無文。難報昊天德。只將管窺腐097_139a亳。泣血書。噫。後之人。非盡人子。幸體至情。苟無傷也。

풍천노씨:

玉溪先生文集卷之三
 行狀
考從仕郞。行顯陵參奉。贈資憲大夫, 吏曹判書兼知義禁府事府君行狀。 


先府君諱友明。字君亮。姓出黃海道之豐川府。國子進士諱裕之裔。厥後繼有名位。高祖諱興吉。贈通政大夫, 吏曹參議。曾祖諱。贈嘉善大夫兵曹參判。祖諱叔仝。嘉靖大夫。禮曹參判兼同知經筵, 春秋館事。世予左副賓客。藝文館提學。考諱。中訓大夫。行藝文館校理, 知製敎兼經筵侍讀官。春037_247b秋館記注官。承文院校理。後贈通政大夫,承政院都承旨, 知製敎兼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藝文館直提學, 尙瑞院正。妣居昌愼氏。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諱先庚之女。以成化辛卯正月壬辰生公早孤。能自泛師力學。稍長。文藻警發。聲稱藹然。與伯兄進士公友艮及季進士公友英。俱有文行。人指爲三珠。莫不注心高仰之。弘治戊午。擧進士。未幾。大夫人卽世。飭終謹禮。哀敬備至。時丁廢朝。短喪令嚴。能持制不變。人以爲難爲。雅有高趣。自是不汲汲爲擧子業。僅餘四十。卽屛不事。撥置世慮。唯以書籍自娛。始037_247c校理公罷病居鄕。未幾捐館。生業不饒。有先世獘廬。無毫髮增飾。或至傾陊。不以爲意。經理一委我母夫人不問。口多食寡。雖至空乏。常晏如也。少鞠于祖妣貞夫人金氏。特見鍾愛。欲以土田臧獲厚賜之。皆力辭不受。晩築小堂。扁曰信古。蒔梅竹及柏予庭中。間以藥草。不雜花卉。凈灑一室。几案必正。疊積簡秩。亦齊整不亂。至於刀硯紙箚之微。頓放必謹。有些箇塵穢。卽令糞去不留焉。不喜與人往來。所與遊必以其人。然有造謁者。亦皆延遇。或有酒黍以供。不計有無。有來問學者。亦諄諄敎告無倦意。伯兄公以毁早歿。037_247d與季氏友愛特至。居第雖稍遠。時相往來游處。浹旬之間。不廢數四。或輪設酒食。合內外講好無虛月。有故未就。則詩筒相遞。間或與之登山臨水。擊鮮煑蔬。成眞率之遊。怡愉觴詠。以盡其歡焉。戊寅年間。慕齋金公安國。觀風本道。以搜羅巖穴爲務。見公與之語。深加敬禮。作堂辭以遺之。與安遇, 盧㻶, 金大有三人同薦。列于朝。除集慶殿參奉。俄移顯陵。恪共職物。愛撫衛卒。雖一命之微。有濟於人多矣。時朝廷更化。選行義之士。別設一科。前設試一日。金公大有來議入對與否。久而乃定。然公卒無幸焉。庚辰春。棄官歸037_248a越三年癸未冬十月辛丑。以疾終于外寢。享年五十有三。葬于咸陽郡治北酒谷子坐千向之原。愼夫人墓下。是年十二月十七日癸丑也。府君爲人。風儀端重。資性簡潔。氣和色正。出言侃侃。人望之。知其不可于以私。平居肅冠巾正坐。非有故。未嘗偃息傾側。委巷非禮之言。不接於口。世俗營殖之慮。未嘗入於其心。恬澹淸苦。安分守約。不敢爲緣髮浮靡事。蓋其天性然也。至其事親盡孝。奉先致敬。仁於族姻。信於朋友。惠於僮使。或有所愆忤。亦不訶詈。先曉喩而後掐罰。然見人非違。則或未嘗不以言責之。迨其晩年。037_248b德義之感人者深。而閭里多有所咨決。敬信無異辭。雖不肖者。亦革面畏飭。不敢肆。人皆稱之曰信古堂而不名焉。早好爲詩。淸澹有格力。又探泝源流。雜唐, 宋詩辨之。百不一失。具識字音淸濁高低。偏旁點畫。無不精解。又善楷法。心畫勁王。深得東晉筆意。人爭寶賞不置。有詩稿藏于家。嘗見人要記誦應擧。於經傳註釋。有所點竄塗抹。責之曰。此獨非聖賢訓辭而敢如是耶。此雖一事。亦可槪見公之所存矣。先娶順興安氏典籍之女。卽文成公裕之裔也。贈貞夫人。後娶安東權氏生員時敏之女。高麗政承漢功037_248c後也。亦封貞夫人。生三男三女。長曰。進士。先夫人出。次。前同知中樞府事。次관。濟原道察訪。女長適察訪林崇杜。次適部將崔佑。亦先夫人出也。次適行牧使靈川申潛。幷崔氏女無後。進士初娶兵曹參判方有寧之女。生二女。長適忠義衛朴理。次適縣監崔彦光。無後。後娶承仕郞梁應麒之女。生三男。長曰士俊。早夭。次士豫。次士价。方業儒。娶奉常寺判官安處順之女。生七男二女。長士訓。進士除別坐。令不仕。次士誨。次士訢。夭。次士諤。夭。次士詮。夭。次士詹。次士諗。女長適柳起。次適許成弼。察訪娶副司果來晜雲037_248d女。生三子二女。長士善。次士尙。次士召。女長適□□。□□□也。次適姜渭老察訪生一子三女。男曰起巖。有文而夭。女長適僉知中樞府事梁應鼎。次適文緯天。次適參判尹毅中。曾孫男女若干人。公少隣一蠧先生家里。然先生多在京師。及其爲宇安陰。則時往來問業於其門。以公生稟之美。信古好義之篤。自早歲已然。計應有契好之深。指授之正。而遐逖渺茫。未聞有其說。竊伏惟念。公在初年。未嘗不以屛絶俗累。遊心澹泊。韻致淸逸爲尙。其爲學也。亦頗事記覽探討之富。及其中年以後。則專精閩洛之書。端坐037_249a一室。手抄口誦。篤好不厭。其立心制行之高。不以老少而有間。儀刑一家。熏化鄕閭。有不可誣者。則竊意實有得於此學。而今無所究尋。自孤不敢遽以爲然。嗚呼痛哉。且孤生五六歲時。頗習句讀。朝夕陪侍。嘗手寫中庸及晦庵先生箴銘跋語。使之誦習。及其跋後名姓之題。則諱而不稱。今猶有遺帖。只書其歲月者焉。又竊記孤或戱遊。則卽令正坐步趨。或挨近書帙。則輒使之奉戴于首。移時乃止。其欲致蒙養之正。垂裕不迷者至矣。而嚴顔遽隔。倀倀失學。及其旣長。而猶不克追省感發。虛過一生。卒於無聞。荒墜無狀。037_249b復安所逃哉。且公之下世。今已五十有餘年。孤得蒙□恩竊官。以至今日。而尙未有墓道之表。雖實有待。其怠慢不虔。亦已甚矣。公今贈官參判秩二品。又當立碑記德。昭示後來。而孤哀暮疾病。死亡無日。大懼不克闡揚潛懿。以伸罔極之思。乃敢撰次世系行實如右。將以請於作者有所採擇焉。嗚呼。以公學行德性之美。不得小見於世。其可紀者止此。而孤又荒忽。不能及吾伯兄在世。叩稟撰述。今雖形容其梗槪。多出於傳聞像想之晩。又不得歷指行事。表以書之。多有闕漏。孤之痛。於是焉爲無窮矣。然其已書者。則037_249c孤雖無狀。亦知蔽誣之爲非孝。焉可苟哉。萬曆三年閏十二月日。孤謹狀。

평택임씨: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1권
 경상도(慶尙道)
안음현(安陰縣)
『신증』【명환】본조 정여창(鄭汝昌)ㆍ문관(文瓘).
【인물】고려 하천(河千) 고종 때 사람이다. 성품이 솔직하고 문장을 잘하여 당시의 표문(表文)과 전문(箋文)은 모두 그의 솜씨에서 나왔다.
본조 임정(林整) 벼슬이 서경 도순문 찰리사(西京都巡問察理使)에 이르렀다. 임득정(林得禎) 정의 손자이다. 무예로써 현달하여 벼슬이 절도부사에 이르렀다.
임정(林整)1에 대하여
임정(林整)1
1356(공민왕 5)∼1413(태종 13).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운봉(雲峰), 호는 보덕(輔德). 태순(台順)의 아들이다.
향리로 입신하였고, 녹사·도염서영(都染署令)·낭장·도관좌랑(都官佐郎)을 거쳐 1385년(우왕 11)에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그뒤 판도정랑·이조정랑·의주목사를 거쳐 1393년(태조 2) 공조판서가 되었다가 서북면도순문찰리사(西北面都巡問察理使)·경상도도관찰출척사(慶尙道都觀察黜陟使) 등 외직을 역임하였다.
1401년(태종 1) 총제(摠制)로서 충청·경상·전라도의 조운체찰사(漕運體察使)가 되어 콩과 쌀을 전후 10만2000여석을 운송한 공으로 왕으로부터 말 한필을 하사받았다. 같은해 경상·전라·충청도 체찰사 겸 수군도절제사 조운염철사(漕運鹽鐵使)가 되어 3도의 주민을 동원하여 조선(漕船)을 건조하였는데, 경상도에서 111척, 전라도에서 80척, 충청도에서 60척을 각각 만들었다.
1403년 동북면도순문사 겸 병마도절제사가 되었고, 이듬해 중군도총제로 명나라에 가서 백성을 본국에 환속시켜준 데 대하여 사례를 하였다.
1407년 형조판서를 거쳐 동북면도순문찰리사 겸 영흥부윤이 되었다가, 1410년 다시 형조판서가 되어 명나라에 하정사(賀正使)로 다녀왔다.
이듬해 서북면순문사가 되었으나 평양부에서 종기가 나 4일 만에 죽었다. 사람됨이 근실하고 중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 치적이 뛰어나 백성들이 기꺼이 복종하였다는 사관의 평을 받았다. 성종조에 청백리에 뽑혔으며, 1482년(성종 13)에 사패(賜牌)로 산 40리를 받았다. 시호는 공혜(恭惠)이다.
참고문헌
定宗實錄, 太宗實錄, 恭惠公歷仕錄, 平澤林氏大同譜, 朝鮮王朝軍船硏究(金在瑾, 一潮閣, 1977). 〈李在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