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사근산성 咸陽沙斤山城


함양 사근산성
함양 사근산성
   
 

사적 제152호. 1966년 지정. 면적 116만 7045m2. 함양의 외성(外城)이라고도 하며, 예로부터 경상도 서부에서 전라도 중부로 넘어가는 요충지에 있다.

그 이전의 기록은 없으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31 〈함양군 성곽조(城廓條)〉에는 사근성의 석축 둘레가 2,796자라 하고, 그 안에 3개의 연못이 있다 하였다. 1380년(우왕 6) 감무 장군철(張群哲)이 왜구에게 성을 빼앗긴 뒤 돌보지 않다가 조선 성종 때 수축하였다고 한다. 또 《함양읍지》에, 성을 친 왜구는 단숨에 함양을 함락시키고 전라도 남원군 인월(引月)에 쇄도하였다가, 때마침 출동한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황산(荒山)에서 격파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신라 ·백제의 국경분쟁과 왜구에 시달리던 곳으로 짐작된다.

산성의 성벽은 부분적으로 퇴락해 있으나, 축성상태가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어 규모를 헤아릴 수 있다. 석축의 잔존부분은 직사각형의 편평한 자연석 또는 가공석의 정연한 어금쌓기로 되어 있다. 또 축조상태는 매우 견고하여, 본래의 높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부분이 많고, 성내의 산꼭대기에는 물이 가득 찬 연못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래 북쪽 물가에는 정여창(鄭汝昌)을 향사(享祀)한 남계서원(濫溪書院)이 있고, 북서쪽으로는 마안산성(馬鞍山城)이 가까이 보인다.

 

경남 함양군 수동면(水東面) 원평리(院坪里)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

면적 116만 7045 m2. 사적 제152호. 함양의 외성(外城)이라고도 하며,

예로부터 경상도 서부에서 전라도 중부로 넘어가는 요충지에 있다.

그 이전의 기록은 없으나,《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31

<함양군 성곽조(城廓條)>에는 사근성의 석축 둘레가 2,796자라 하고,

그 안에 3개의 연못이 있다 하였다. 1380년(우왕 6) 감무 장군철(張群哲)이

왜구에게 성을 함락당하였다. 그뒤 돌보지 않다가  조선 성종 때 개축하였다고

한다. 또 《함양읍지》에, 성을 친 왜구는 단숨에 함양을 함락시키고 전라도

남원군 인월(引月)에 쇄도하였다가, 때마침 출동한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황산(荒山)에서 격파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신라·백제의

국경분쟁과 왜구에 시달리던 곳으로 짐작된다. 산성의 성벽은 부분적으로

퇴락해 있으나, 축성상태가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어 규모를 헤아릴 수 있다.

석축의 잔존부분은 직사각형의 편평한 자연석 또는 가공석의 정연한

어금쌓기로 되어 있다. 또 축조상태는 매우 견고하여, 본래의 높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부분이 많고, 성내의 산꼭대기에는 물이 가득 찬

연못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래 북쪽 물가에는 정여창(鄭汝昌)을 향사(享祀)한 남계서원(濫溪書院)이 있고,

북서쪽으로는 마안산성(馬鞍山城)이 가까이 보인다.

 

              <사근산성 복원 계획 조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