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계 시문

 
유뇌계(兪뢰溪)


함양(咸陽) 사람들이 서로 전하기를 유뇌계(兪뢰溪 뇌계는 유호인(兪好仁)의 호)는 어머니가 늙은 까닭으로 서울에서 남방으로 돌아가는데, 성종(成宗)께서 구슬 두 개를 하사하였다.
그런데 한강(漢江)을 건너다가 배 안에서 구슬을 놓쳐 물 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뇌계는 임금님이 준 것을 보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죽을 죄를 졌다 하여 북쪽으로 대궐을 바라보고 통곡하였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잉어 한 마리가 뛰어올라 배 안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잉어 배를 갈라보니 두 구슬이 들어 있었다.
뇌계가 졸(卒)하자 임금이 슬픈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풍수(風水)에 밝은 자에게 명하여 지리를 보아 장사지내되, 반드시 자손이 번성할 명당(明堂)을 가려서 장사지내도록 하였다. 그러나 뇌계의 아들 아무가 어질지 못한 주제에 다만 이름난 아버지의 자식임을 빙자하여 풍수를 잘 대우하지 않았다. 그러자 풍수는 마음속으로 노여워하여 고의적으로 자손이 영락하게 될 자리를 가려서 장사를 지내 주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자손이 떨치지 못한다고 한다.

 

虛白堂文集卷之七 男世昌編輯
 
뢰溪詩集序 


詩難言也。言詩者論氣而不論理。非也。氣以行於外。理以守諸內。守於內者不固。則行於外者未免泛駕而詭遇。詩以理爲貴也。善爲詩者悟於理。故能不失根本。苟失根本。雖豪宕濃艶。雕鎪萬狀。而不可謂之詩也。自麗季至國朝。詩之名家非一。而能悟其理者蓋寡。平者失於野。豪者失於縟。奇者失於險。巧者失014_473c於碎。俗習卒至於委靡而不回。吁。此則詩之不幸也。兪侯克已氏。金閨彥士也。少時。學詩於佔畢先生。先生以詩鳴於世。縉紳之士攀附而席餘光者無限。余亦與先生相友善。每聞先生之論人。以侯爲奇才。其後余入鑾坡。與侯相從非一日。耳其言而咀其詩。其詩深悟於理而自得。故篇篇有範。句句有警。米鹽醞藉。不落世之窠臼。譬如秋山。多骨少肉。奇峭無窮。而草木亦與之堅實。其得雅頌之遺音歟。昔。鉅鹿侯芭從楊雄授太玄法言。劉歆見其書曰。吾恐後人用覆014_473d醬瓿也。嚴厷謂桓譚曰。雄書能傳於後世乎。譚曰。凡人貴遠而賤近。親見子雲。祿位容貌不能動人。故輕其書。自雄沒至今四十餘年。而其書始行。當其時。雄未甚顯。而人未甚貴之也。所從學者惟芭。所歎服者惟譚。然猶流波遠曁而不泯。況今侯詩。佔畢之所稱。成廟之所深許。而膾灸於衆口者。其不覆醬瓿也明矣。所謂詩能窮人者。不遇知於世主。泯滅其跡耳。侯則際會文明。得遇聖君。而猶不達。信乎詩之能窮人也。侯之職位事蹟。不得垂於靑史。而所可傳者惟詩014_474a耳。其可不編而壽諸梓歟。見侯之稿。慨然抆淚而題之。內辰中秋。磬叔敍。

 

佔畢齋集卷之十
 
齊雲樓快晴 六月十六日 


雨脚看看取次收。輕雷猶自殷高樓。雲歸洞穴簾旌暮。風颭池塘枕簟秋。菡萏香中蛙閣閣。鷺影外稻油油。憑欄更向頭流望。千丈峯巒湧玉虯。

 

四佳詩集卷之十○第九
 詩類
咸陽齊雲樓次韻。 二首 


岧嶢傑閣高揷天。自可登臨挾羽仙。歲月幾何頻010_372d作客。江山如此又開筵。故人跌宕詩三百。賢主風流酒十千。月白夜深吹鐵笛。白雲黃鶴想當年。

咸陽佳麗別藏天。文酒風流卽地仙。徐邈一中曾樂聖。焦君五斗已驚筵。上界有層樓十二。孤雲已去歲三千。洞中靑鶴應無恙。許我何時學引年。
四佳詩集卷之十一

 

佔畢齋集卷之十一
 
重九齊雲樓。遙見東山頂野人登臨飮酒。至薄暮。或坐或立。或扶携下山。或偃臥枕藉。望之如畫。忻然復和許學長韻。 


012_292c華譙徙倚正斜陽。舊眼靑山半染黃。無數野人登紫翠。幾多糗餌鬪芬芳。已敎烏沒蟾還繼。未始凡存楚更亡。病守望來成雅興。歲雖下熟可銜觴。

 

玉溪先生續集卷之一
 詩○七言絶句
齊雲樓。敬次先祖韻。四首 


塵昏古壁蒙若緘。拂誦遺詩淚濕衫。不分如今忝踵武。臨民撫事愧才凡。
架城層搆屹磨空。一髮頭流落眼中。今日和題留句037_346d後。風流文雅詎望同。
原隰馳驅强老翁。謾勞文簿愧移風。已知宣化皆由我。其奈從前欠飭躬。
雨餘官道浥輕塵。十里村郊物色新。晩上風亭留韻在。續題非是欲誇人。

 

佔畢齋集卷之八

 

允了又作咸陽郡地圖。題其上。九絶。
 

012_276a去年塵土汚岩巒。望嶽樓中更靦顏。却恐英靈恥重滓。洞門牢與白雲關。

 

뢰谿集卷之二
 七言小詩
咸陽灆㵢竹枝曲十絶 


學士樓頭明月輝。儒仙一去鶴仍歸。鷄林黃葉千年後。誰認當時丁令威。
015_108c城南城北鬧鷄豚。賽罷田神穀雨昏。太守遊春勤勸課。肩輿時入杏花村。
十里柔桑綠漲林。淸明時節已成陰。隔牕夢覺間關鳥。唱得蠕蠕百箔蠶。
秋風一郡烏椑樹。滿眼霜紅似醉鄕。百歲生涯眞樂土。家家不解子孫忙。
沙斤城畔起陰雲。坤靈夜泣雨紛紛。庚申萬鬼啾啾哭。似恨當時張使君。
頭流山上起霱雲。神母霏霏絳彩旂。肅莫椒菜簫鼓沸。顧憑杯珓卜靈威。
015_108d月明塚上但明月。寒食年年宿草多。昨夜遊魂瓊佩冷。東風吹盡杜鵑花。
拋雲鬒髮竝金鈿。愁向梅花意共傳。脈脈蘭心君未會。小孤臺畔水如天。
嬰年總角拜江神。暗禱休爲薄命人。十藏仳離緣最惡。每將釵釧卜郞身。
挾彈郞君白玉膚。雲情不慣拒招呼。殷勤密符黃金贈。奈此羅浮自有夫。

 

泰村先生文集卷之一
 
代人作二首 


與君相別日。同上小孤臺。君如臺下水。一去不還來。光風樓畔鏡湖濱。兩地開花一樣春。可愛可憐猶未折。含情空作斷腸人。

 

東谿集卷之一 豐壤趙龜命錫汝甫著
 
贈宗姪汝範 錫夏 序 


余性喜談文字。自寓天嶺。但屈首尋行數墨。非無日215_013b與處者。而其所言。余不欲聽。余有言。彼又不肯聽。嘿嘿視而已。會汝範千里命駕以從。相與揚扢上下文字。事暇則聯袂逍遙於學士樓小孤臺之間。歌詠相屬。凡留連數十日而去。其喜可知也。

 

東岡先生文集卷之一
 
西溪唱酬三首○幷小序 


嘉靖丙寅仲夏十三日。盧徙菴子將鄭梅村遂初復顯姜介菴仲輔與開巖舍兄洎余。會話于濫溪書院。共結西050_190c之約以旣望之日。是日乍陰乍晴。諸君不失期。相俟于뢰溪邊樹下。邀我輩同行。鄭竹軒仲尹曺梅菴幼淸與沙溪舍兄隨焉。共訪西溪。溪在天嶺郡西未十里。林深谷幽。石潔泉淸。諸君皆缷馬洞門。足踏苔巖。五步一顧。十步一坐。每得佳處。輒嘯詠沈吟。咸有得得之趣。於是各賦言志。以記淸遊。

幼淸仲輔。與開巖酣歌相和。逸興發越。仲輔歌所製數闋。思致平遠。尤可翫賞。令人一唱三歎。歌罷。遂騎馬帶雨而歸。至廣惠院。相與登樓敍話。霎時而別。噫。穹壤百年。極欠一會。良朋之合。雲水之樂。得一猶難。而又兼之耶。此吾所以酣050_191b觴賦詩。嘯詠長吟而不能自已者也。他年索居中。夢想淸遊。應不堪心魂之飛越。唱酬瓊玉。當爲諸君面目於此時矣。於是乎錄而藏之。是月念日。直峯記。

松亭先生續集卷之三
 附錄
二十年丁亥先生三十五歲

三月。與李梧月堂惟諴游落水庵。記見文集

 

十月。與牟士厚游風化樓蓮池。

奉母夫人會飮于三槐樓

061_180a是月六日。先生季弟梅軒公生日也。先生奉母夫人設酌于三槐樓。梅軒公唱孤雁歌以自况。先生爲作七言短律。覺齋及守肯齋皆和之。

與李梧月權元堂。飮酒뢰溪亭

亭故俞先生好仁所築也。先生詩。有뢰溪亭上一盃酒之句。

 

 해동잡록 3 본조(本朝)

유호인(兪好仁)


○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극기(克己)요 호는 뇌계(㵢溪)로 점필재(佔畢齋)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다. 성종[成廟] 때 급제하였다. 시를 지으면 맑고 고우며 단아하고 건실하여 매우 성종에게 중망을 받아 저술한 것을 등사하여 바치게 하였다. 일찍이 장령이 되었다가 어버이가 늙음으로 인하여 합천(陜川) 수령으로 갔다가 거기서 죽었다. 문집이 세상에 전한다. 어버이를 위하여 봉양하기를 주청하여 수찬에서 산음(山陰) 수령을 제수 받고, 교리에서 의성(義城) 수령을 제수받고, 최후로는 장령으로서 또한 돌아가 부모 봉양하기를 주청하였다. 임금께서는 그의 어머니를 수레에 태워서 서울에 오게 하였으나 병으로 오지 못하게 되니, 임금은 어찰(御札)을 이조에 보내어 이르기를, “호인(好仁)은 어버이 섬길 날이 짧으니 그 이웃인 진주(晉州) 수령을 제수하라.” 하였다. 이조에서는 까닭없이 바로 갈면 기존의 법과 어긋나므로 불가하다고 아뢰니, 이에 합천(陜川)의 수령이 비게 됨을 기다려서 이를 제수하였다. 임금께서, 지은 시문을 기록해서 올리게 하여 곧 칭찬하고 그의 어머니에게 먹을 것을 내리시니, 사람마다 영광스럽게 여겼다. 성종께서는 글을 좋아하시어 유림을 사랑하고 권장하시어서 한때 문장으로 으뜸이요, 걸출한 선비들로 홍문관을 빛나게 하였는데, 호인이 늙은 어버이를 봉양한다는 것으로써 외직을 주청하여 나가게 되었다. 일찍이 올린 시고(詩稿)에,

북쪽을 바라보니 임금과 신하는 격해있고 / 北望君臣隔
남쪽으로 내려오니 어미와 자식이 함께로다 / 南來母子同

하는 구절이 있었다. 임금께서 조용히 칭찬하며 읊조리기를, “호인은 몸은 비록 외지에 있으나 마음으로는 임금을 잊지 않고 있구나.” 하였다. 《용천담적기》
○ “위로 선궁(仙宮)에 들어가 사방을 바라보니 끝이 없었고, 동해 바다는 술동이가 되고 삼신산(三神山)은 차려놓은 안주 같도다. 아래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니 눈에 놀이 분분한 것이 특히 강절(康節 송 나라의 소옹(邵雍))의 낙양(洛陽)을 회고한 느낌이 있도다.” 하였다. 《송도록(松都錄)》
○ 개성(開城) 동쪽에 큰 우물이 있는데 맑고 맑은 물이 여러 자 되는데 이따금 우물 속에서 물 끓듯 물거품이 끓어 오르고 신어(神魚)가 나왔다 들어갔다 함을 역력히 셀 수가 있었다. 세상에 전하기는 은바리로써 판 우물이니, 고려(高麗)의 의조(懿祖) 작제건(作帝建)이 용녀(龍女)에게 장가들고 처음으로 개성(開城) 산골 기슭에 이르러 은바리로 땅을 파니 물이 솟아나와 길이가 두 자 가량 되어 이로써 우물이 되었는데 모든 기도(祈禱)할 적에는 모두 제사지냈다. 동상
○ 봉명산(鳳鳴山)에 현릉(玄陵)과 정릉(正陵) 두 능이 있는데 다같이 한 멧부리에 높이 있었다. 처음에 황당(皇堂)을 지을 적에 금 오리와 은 기러기 등으로 장식하여 그 제작이 한때의 묘한 극치를 이루었으니 비록 여산(驪山)의 역사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함은 없을 것이다. 동상
○ 천마(天磨)와 성거(聖居) 두 산에는 푸르고 푸른 것이 솟아나서 하늘을 뚫고 들어갔는데, 혹은 용과 범 같기도 하고 혹은 칼끝 같기도 하여 기이함을 경쟁하듯 괴이한 것을 나타냄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동상
○ 안동(安東) 땅은 척박하고 백성은 가난하지만, 풍속이 농사와 누에 기르는데 힘써서 검소하고 준절(撙節)하며 일용을 아껴 흉년에 대비하기를 힘쓰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주밀하지 않음이 없고, 다른 고을에서는 그에 따를 바 없었다. 이제 ‘소반 위의 밥은 낱낱이 다 신고로 이루어졌음을 뉘라서 알겠는가[誰知盤中餐粒粒皆辛苦].’ 라는 10자를 써서 운자도 하며, 10편의 노래를 지어 백성들이 걱정 근심하며 고생하는 상황을 대강 진술하였는데, 거의 빈풍칠월(豳風七月 《시경》 중 국풍(國風)의 편명(篇名))의 뜻을 모방하였다. 본집(本集)
○ 뇌계(㵢溪)는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열람하고 겸하여 잡록(雜錄)까지도 채취하여 〈동도 잡영 25수(東都雜詠二十五首)〉를 지었다. 동상
○ 뇌계는 육신(六神)을 축(祝)했는데 첫째는 수령(守靈)이요, 둘째는 결화(結華)요, 셋째는 용연(龍烟)이요, 넷째는 육영(育嬰)이요, 다섯째는 혼정(魂庭)이요, 여섯째는 용요(龍曜)인데, 수령ㆍ심신ㆍ혼정ㆍ비보(脾補)는 《황정경(黃庭經)》에 나타난다. 동상
○ 김맹성(金孟性)이 사건에 연좌되어 고양(高陽)으로 귀양갔는데, 극기(克己)가 고양에 가서 선원(善源 맹성(孟性)의 자(字))을 대접한 시가 있는데,

하늘이 이적선(李謫仙 이백(李白))을 내려보낸 것은 원래가 귀양이 아니었으니 / 天遣謫仙元不謫
마음대로 휘두르며 한껏 노는 데 해로울 것 없었네 / 不妨揮斥恣天游
어찌하여 흐르는 물에 복숭아꽃의 글귀가 / 如何流水桃花句
부질없이 김군을 괴롭히는 듯 머리를 흔들게 하는가 / 枉被金君苦掉頭

하였다. 시격(詩格)
○ 최치원(崔致遠)이 가야산(伽倻山)에 숨어 살다가 하루 아침에 갓과 신을 숲 속에 버리고 돌아간 곳을 알지 못했다. 절 중이 화상을 그려서 글 읽던 집에 두었었다. 뇌계(㵢溪)는 시를 지어 말하기를,

숲사이에 갓과 신을 두고 간 곳이 아득하고 아득한데 / 林間冠屨去茫茫
뉘라서 유선(최치원(崔致遠)을 지칭함)은 본래 없어지지 않음을 알랴 / 誰識儒仙本不亡
흐르는 물소리 산을 덮었다고 읊은 것 오래 되었는데 / 流水籠山吟已遠
바람과 구름이 빈 독서당을 지키도다 / 風雲空護讀書堂

하였다. 본집(本集)

띠로 덮은 지붕 빗발이 새서 앙상한데 / 茅茨雨脚漏床床
모진 바람 약속이나 한 듯 짝을 지어 미치게 구네 / 與約獰風作黨狂
네 벽에 쓰인 글을 거두어 들일 수 없어 / 四壁詩書收不得
한 반은 한 쪽 옆에 젖는대로 버려 두었네 / 從敎一半濕扁傍
동상
임해전(신라의 대궐) 앞에서 겨우 한 소리가 나더니 / 臨海殿前纔一聲
상서로운 바람에 절 안의 요망한 분위기가 맑아졌다 / 祥風宇內妖氛淸
필경에는 임금과 신하가 취향(술 취하여 정신 잃은 지경)에 들어가니 / 畢竟君臣入醉鄕
포석정 앞뜰에는 바람과 비가 분망하였다 / 鮑石亭前風雨忙
비록 좋은 이름으로 만파(萬波)를 고요하게 하였다 하나 / 縱使佳名息萬波
슬프구나. 젓대소리 네 어찌하랴 / 吁嗟笛兮奈爾何
〈만파식적(萬波息笛)〉
아득한 붉은 까치와 흰 닭의 상서여! / 査査丹鵲白鷄祥
서라벌이 실어와서 다른 성씨가 되게 하였다 / 徐伐輪來異姓王
천년이나 오이 넝쿨 뻗 듯 뻗어서 멀다고 이르지 마소 / 莫道一千瓜瓞遠
가련한 포석정의 운도 벌써 처량하기 만하네 / 可憐匏運早凄凉

하였는데, 작(鵲)은 석(昔)씨를 말하고 계(鷄)는 김(金)씨를 말한다. 동도(東都)
○ 박연(朴淵)의 못 가운데 돌이 있는데 반은 나와서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것 같다. 《사기》에 전하기를, “고려(高麗) 문종(文宗)이 일찍이 그 위에 올라가니, 바람과 물결이 문득 일어나며 키[箕]질하는 상태가 나타났다. 이영간(李靈幹 고려 문종(文宗) 때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있었다)이 글을 던져 용을 매질하니, 바람과 물결이 드디어 잠잠해졌다.” 하였다. 뇌계(㵢溪)의 시에,

남기의 좋은 바람 푸른 하늘을 말았는데 / 南箕好風捲碧落
한 단계로 경계 지어 천하의 흰 것을 깨뜨렸다 / 一段界破天下白

하였다. 《송도록(松都錄)
○ 영안성(永安城)에 올라 남쪽으로 운해(雲海)에 임하니, 고래의 어금니와 눈 같은 물결이 밤낮으로 넓고 흉흉한데, 구슬 누대와 신기루의 대궐이 변화무쌍하였다. 동상
○ 조각한 난간과 아로새긴 동자기둥을 옥구슬로 매고 옥으로 얽은 것이 모두 이미 가시덤불 잡목 숲의 이슬에 매몰되고, 이미 여우와 토끼들이 사는 곳으로 되어 버렸다. 동상
○ 신라(新羅)시대로부터 국조(國朝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시로 이름난 사람은 한둘이 아니지만 평범한 자는 야(野)한 것에 빠졌고, 뛰어난 자는 화려한 것에 빠져서 마침내 시들고 약해져서 돌이키지 못하였다. 〈뇌계시집서(㵢溪詩集序)〉

저 청량산을 바라보니 / 瞻彼淸凉山
산 가운데 도토리나무가 많기도 하다 / 山中多橡木
금년도 작년과 같아 / 今年似去年
주렁주렁 달린 열매 주울 만하네 / 離離實可拾
온 집안이 지고 이고 돌아와서 / 擧家負戴歸
방아에 찧어 항아리 속에 쌓아두니 / 舂屑甕中積
흉년인들 어이 나를 죽일 수 있을건가 / 凶年豈殺我
오히려 넉넉히 조와 쌀낱을 대용하리라 / 猶可代粟粒
〈화산10영(花山十詠)〉


[주D-001]여산(驪山)의 역사 : 여산(驪山)은 진(秦) 나라 서울 함양(咸陽) 동쪽에 있는 산인데 진시황이 자기 묘지로 정하고 미리 공사를 개시하였는데, 전국의 죄수 72만 명을 궁형(宮刑)시켜 전부 그 여산공사에 사역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나라가 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