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해설


 


벽송사 삼층석탑

 

지정번호

  보물 제47호

소재지

  함양군 마천면 주성리

재료및규모

  화강암, 높이 350cm

시 대

  조선시대

 

 

벽송사 3층석탑이라 불리는 이 탑은 탑비나 유래를 전하는 문헌이 없어 건립 경위를 알 수 없는데,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방형 석탑이다. 이 탑의 위치는 원래 벽송사 대웅전 동편에 세워 놓은 것인데 사찰이 아래로 옮겨져 탑만 남게 됐다. 제작수법이 흡사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나 사찰의 조성 연대가 1520년 조선조 중종 15년이니 조선시대의 탑으로 본다.

지면에 방형의 지대석을 깔고 그 중앙에 다시 지대석을 얹어 놓고 그 위에 1단의 얕은 턱을 마련한 중석을 두고 우주와 탱주를 모각하였다. 탑신석은 옥신석이 각각 한 돌인데 옥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었으며 옥개석은 층단이 초층과 2층은 4단이나 3층은 3단이다. 옥개석은 전각의 반전이 있으며 상륜부는 복발과 노반이 남아 있다. 각 층의 체감 비율이나 석재의 결구수법이 잘 정돈되어 있으나 전체 조형의 힘이 없다.

 


승안사지  3층 석탑

 

지정번호

  보물 제294호

소재지

  함양군 수동면 무명리 263

재료및규모

  화강암, 높이 430cm

시 대

  고려시대

 

2중 기단의 3층 석탑으로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반면 기단 구성이 엉성하고 상하 각 부분의 비례도 균형을 잃는 등 결점이 많다. 그러나 일부 특수한 수법을 구사하고 또 장엄한 조형미 구성에 힘쓴 점은 고려 초기의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1962년 옮길 때 탑신에서 사리장치와 홍호치 7년이라 명기된 문서가 발견됨으로써 조선 성종 25년(1493)에 탑을 옮겼음이 증명되었다. 이때 한지에 먹으로 쓴 문서와 함께 비단조각과 주머니, 황동 네뚜껑 달린 함, 비치색 유리 사리병, 은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이들 장엄구들은 탑을 옮기면서 넣은 것으로 추측된다.

 


함양  석조여래좌상

 

지정번호

  보물 제376호

소재지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229

재료및규모

  화강암, 높이 245cm

시 대

  고려시대

 

함양읍내 함양중학교 교정 교사 앞쪽에 안치된 높이 2.45m 의 화강암 석조여래좌상이다. 대좌 높이까지 포함하여 4m가 넘는 조각으로서 파손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대좌만 있고 광배(光背)는 없어졌는데, 전반적으로 풍화가 심하고 팔과 무릎, 상대석(上臺石)이 크게 파손되어 있다. 얼굴은 길고 비대하나 마멸이 심하고 얼굴 표정은 모호하고 어깨는 넓고 가슴은 당당하나 입체감이 부족하다. 왼쪽으로 두른 법의(法依)의 주름은 선명하지만 형식에 흘러 힘이 없다. 대좌는 장방형의 4각대인데, 상하대석에는 꽃잎이 길다란 겹잎 연화문(連花文)이 새겨지고, 4각의 중대석에는 각 면마다 안상 2개씩을 음각했다. 불상이나 대좌에 고려 양식의 특징이 역력하여 고려초기의 '거상(巨像)의 붐'을 타고 조성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함양 마천면 마애여래입상

 

지정번호

  보물 제375호

소재지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768-6

재료및규모

  화강암, 높이 580cm

시 대

  고려시대

 

통일신라시대 양식이 남아 있는 고려 초 10세기경에 제작된 작품으로 거대한 화강암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으로 광배, 물신, 대좌를 갖추고 있다. 이 불상은 하반신이 머리와 상반신에 비해 너무 긴 느낌이며, 나발의 머리에 작은 육계가 있고, 얼굴은 넓고 강건해 보이는데, 긴 눈, 큼직한 코, 굳게 다문 입 등은 더욱 힘을 느끼게 하지만 온화한 미소로 해서 자비로운 불안을 만들고 있다. 넓고 당당하게 벌어진 양 어깨에는 통견식의 법의를 걸쳤는데 가슴에서 한번 반전되었다. 이와 같은 착의법은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 통일신라 조각에 유입된 양식이다. 대좌는 석탑의 하단 양식으로 엷게 만들고, 그 위에 양련을 조각한 것이다. 광배는 주형거신광인데, 두광과 신광을 두 줄의 선으로 양각했는데, 안에는 연주문을, 그리고 바깥쪽에는 화염문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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