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사 승려가 간행한 소아과 전문 의서 《보유신편 保幼新編》


 

       안국사 승려가 간행한 소아과 전문의서 『보유신편(保幼新編)』
       물재(勿齋) 노광리(盧光履)가 지은 『보유신편(保幼新編)』 서문

 경(經)에 이르기를 "차라리 열 명의 어른은 고칠지언정 한 명의 어린이는 고치기 어렵다."고 하였다. 대체로 어린이는 오장 육부가 취약하고 기혈이 정해지지 않았으며 경락과 맥과 숨이 여리기가 가는실 같아서 허해지기도 쉽고 실해지기도 쉬우며 금방 냉했다가 금방 실해지기도 한다. 입으로는 증상을 말하지 못하고 손으로는 아픈 곳을 가리키지도 못한다. 참으로 바른 처방을 상고하여 먼저 손을 쓰지 않으면 치료에 임하는 사람이 헷갈려 마침내 속수 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얘기는 그만두자. 나 자신이 거듭 아이들의 참척을 겪고나서 마음으로 늘 가슴아파하였다. 작년 가을에 안국사(安國寺) 승려 정훈(正訓)이 소매 솎에 한 권의 책을 넣고 와서 말하기를 "이것은 옛날 명나라 무기선생(無忌先生) 성모(成某;이름은 전해지지 않음)가 지은 『보유신편』입니다. 증상을 논한 것과 처방을 만든 것이 가장 상세하고 구비되었지만 세상 의사들이 실속없는 책으로 보고 못쓰는 종이에 전하니 저는 오래지나면 없어질까 염려하여 가진 재산을 다 털어 간행하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선생은 한마디 말씀을 적어주시어 책머리에 올리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나는 의학에는 실로 문외한이라 그 학설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고 거기다 쇠약하고 병들어 고생스럽게 해를 보내느라 글을 지을 겨를이 없었다. 요사이 옛 책상자 속에 있던 그 책을 한가로이 열람해보니 대개 그 학설은 옛 의경(醫經)에 근원한 것이며 새 처방을 붙인 것이었다. 번잡한 것을 삭제하고 요긴한 것만 뽑아놓았으니 방대하여 찾기 어려운 걱정이 없었다. 운기(運氣)와 오행(五行)을 참고하고 음양과 일시를 살피어 증세에 맞추면 바로 효험이 있는 것이 마치 신표를 맞추는 것과 같았다.
 지금 널리 유포될 길을 얻었으니 집집이 소장하고 사람마다 외운다면 비록 처방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도 책을 펼치면 분명하여 때에 맞추어 약제를 써서 어린이로 하여금 다 죽어가다가도 되살아날 수 있게 함으로써 함께 자비의 배를 타고 같이 장수나라에 들어가게 할 것이다.
 대개 유교가 불교를 배척하는 것은 그들이 허무(虛無) 적멸(寂滅)에 공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넉넉지 못한 처지면서도 심력을 다하여 백성을 장수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였으니 우리 유가가 못한 것을 승려로서 해냈다고 누가 말해줄 것인가? 나는 이에 대해 더욱 늦게 본 것을 애통해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부끄러워하면서 서문을 쓴다.

 헌종 11년(1845) 칠석날 물재병부(勿齋病夫) 노광리(盧光履1775-1856,당시 71세) 짓다.

 이 글은 노광리의 문집과 『보유신편』 간본에 실려 있는데 문집에는 연대 표기가 없고 간본에는 안국사란 말이 삭제되었다. 보유신편의 안국사 초간본은 성주(星州)에서 간행되었고 성주개간본에는 노광리의 서문이 없고 노서본(盧序本)은 또 성주개간의 간기가 삭제되어 있다. 이로 보아 성주 초간판을 함양의 안국사로 옮겨온 뒤 노광리에게 서문을 부탁하여 보각하고 함양에서 계속 인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유통본은 대구의 방각본(민간상업출판물) 업자이던 재전당서포(在田堂書鋪)의 김기홍(金璂鴻)이 1909년에 간행하고 1913년에 중간한 것으로 이 본이 널리 유통되었다.
 안국사는 성주의 독용산성(禿用山城)에도 있고 함양 마천의 금대암 가는 길에도 있는데 함양 안국사는 조선조 태종 때 선종(禪宗) 판사(判事)인 행호조사(行乎祖師)가 창건한 것이다. 세종실록의 세종 20년(1438) 7월 2일에 환관 배훤을 보내어 함양에 가서 중 행호를 불러오게 하였다고 하였다. 세종 30년(1448) 7월 18일에 행호가 세종 28년(1446) 3월 24일에 서거한 세종왕비 소헌왕후의 명복을 비는 법주(法主)가 되었다가 오래지 않아 죽었다고 언급하였으니 행호는 세종 28년이나 29년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안국사에는 행호조사의 부도탑으로 추정되는 은광대화상(隱光大和尙)부도가 경남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헌종 11년(1845)에 『보유신편』을 간행한 정훈(正訓)은 사적이 전해지지 않아 알 수 없다.  
 『보유신편』을 보면 첫머리에 서문, 목록, 범례가 있고 운기유행법, 소아병론총론 이하 태열을 필두로 소아 질병의 각종 증상에 대한 처방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