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교普天敎

신흥종교 보천교: 1911년 차경석(車京石)이 전라북도 정읍(井邑)에서 증산사상(甑山思想)을 기반으로 세운 종교. 차경석은 일찍이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하였으나, 강일순(姜一淳;호는 甑山)을 만난 뒤로는 그를 추종하였다. 1909년 강일순이 죽자 1911년 신도들은 강일순의 부인 고씨(高氏)를 중심으로 선도교(仙道敎;뒤에 태을교)라는 이름으로 뭉치기 시작하였고, 차경석은 이때 중추적 구실을 하였다. 

1921년 경상남도 덕유산 기슭의 황석산(黃石山)에서 대규모의 천제(天祭)를 올리고 국호를 시국(時國), 교명을 보화교(普花敎;뒤에 보천교라 개칭)로 선포하였다. 보천교의 세력이 커지고, 이와 함께 보천교에서 대동아단결을 강조하는 친일적 태도를 보이자 고위간부들이 이탈, 별도의 교단을 세우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이에 따라 교세가 위축되는 가운데 1936년 차경석이 죽자 교단은 해체되었다. 

광복 후 교단은 다시 조직되었지만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 신파와 구파로 분열되어 있다. 보천교의 신앙대상은 삼광영(三光影)이다. 삼광영이란 일·월·성을 말하며 이는 모든 조직의 기본이 된다. 기본교리는 인의(仁義)이며, 경천·명덕(明德)·정륜(正倫)·애인(愛人)의 4대강령과 상생(相生)·대동(大同)을 강조한다. 

 

차경석 (車京石)

1880 전북 고창~1936.

증산교(甑山敎)의 일파인 보천교(普天敎)의 창시자.

호는 월곡(月谷). 초기에는 동학교도로서 동학운동에 가담했다가 동학이 천도교(天道敎)로 개편된 이후에는 전라도 순회관(巡會官)을 지내기도 했다. 1907년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일순(姜一淳)을 만난 후 증산교에 입교했다. 그후 자신의 이종누이인 고판례(高判禮)를 강일순의 수부(首婦:교주의 부인)로 천거했다. 1909년 강일순이 죽자 전국을 순회하면서 수도생활에 전념했다. 1911년 강일순의 부인이자 자신의 이종누이였던 고부인이 증산탄신기념치성(甑山誕辰紀念致誠) 도중 증산의 영(靈)에 감응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때 많은 교인들은 고부인에게 증산의 가르침이 이어졌다고 보고 고부인을 교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선도교(仙道敎)라고 하는 증산교 최초의 교단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고부인은 새로 형성된 교단을 이끌 지도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차경석이 점차 교단을 장악해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1918년 많은 신도들이 고부인을 따라 교단을 탈퇴함으로써 차경석은 사실상의 교주가 되었다. 그는 1920년부터 교단을 재정비하기 시작하여 전국의 신도를 60방주(方主)로 조직하고, 스스로를 동방연맹(東方聯盟)의 맹주로 자처했다. 그리고 조선은 다가올 세계통일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1921년에는 일본경찰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경상남도 황석산(黃石山)에서 천제(天祭)를 드렸다. 이때 국호(國號)를 '시국'(時國)이라고 했고, 교명(敎名)을 '보화교'(普化敎)라고 정했다. 또 자신이 천자(天子)로 등극(登極)할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차천자(車天子)라고 불렀다. 1922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에 보천교라는 간판을 달았다. 이때부터 교명이 보천교라고 알려졌다. 당시 보천교의 교세는 매우 확대되어 간부급만도 50만 명을 넘었고 일반신도는 6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처럼 교세가 커지자 일제는 보천교에 대한 감시와 회유책을 병행했다. 그결과 보천교 내에는 시국대동단(時國大同團)이 조직되어 친일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 단체는 전국을 순회하면서 일제의 논리인 대동아(大東亞) 단결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그후 전시체제가 더욱 악화되면서 일제의 종교탄압이 강화되었다. 이때 나온 유사종교해산령(類似宗敎解散令)에 의해 보천교도 교단 자체가 해체되었다.

보천교 (普天敎)

1911년 차경석(車京石)이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서 창시한 증산교 계통의 신종교.

차경석은 원래 동학교도였으나 강일순(姜一淳)을 만난 뒤 증산교도가 되었다. 1909년 강일순이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사망하자 그의 부인 고부인(高夫人)에게 교권이 넘어갔다. 이때 창립된 교단이 선도교(仙道敎)이다. 그러나 고부인은 교단을 지도·통제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그녀의 사촌동생인 차경석이 교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자 고부인과 그녀의 추종자들은 교단을 떠나게 되었다. 차경석은 자신이 동방의 맹주가 될 것이며, 조선은 세계통일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1920년에는 교단조직을 60방주(方主)로 재편하고 55만 7,700명에 달하는 간부를 임명했다. 1921년에는 경상남도 함양군 황석산(黃石山)에서 대규모의 천제(天祭)를 올렸다. 이 천제는 일본 경찰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행해졌으며, 국호를 시국(時國), 교명을 보천교(普天敎)라고 제정했다. 이 천제를 기화로 하여 차경석은 천자(天子)로 등극할 것이라는 소문이 팽배해졌고, 차천자로 불렸다. 1922년 〈보광 普光〉을 발행했고, 1925년에는 최남선이 경영하던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인수·경영했다. 그후 일제의 종교탄압이 강화되자 차경석은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하여 조선총독부에 친일사절단을 파견했으며, 또 시국대동단(時局大同團)을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는 등 친일활동을 했다. 그러자 교단 내에서 그의 친일활동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탈퇴하여 각기 새로운 교단을 세우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태을교(太乙敎)·동화교(東華敎)·수산교(水山敎)·삼성교(三聖敎)·무을교(戊乙敎)·인천교(人天敎)·원군교(元君敎) 등이다. 1936년 차경석이 죽고 일제의 '유사종교해산령'으로 인해 보천교는 해체되었다. 8·15해방 후 다시 교단이 조직되었지만 과거의 교세를 회복하지 못했고 신파와 구파로 분열되었다. 보천교의 교리는 인의(仁義)에 기초하고 있다. 즉 인의를 실천하는 것이 인도(人道)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한다. 신앙의 대상은 삼광영(三光影)으로서 일(日)·월(月)·성(星)을 받든다. 의례는 사절후치성(四節候致誠)과 5회의 정례치성을 드린다. 교단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전은 〈대순전경 大巡典經〉을 비롯하여 〈대도지남 大道指南〉·〈교조약사 敎祖略史〉 등이다.

강일순 (姜一淳)

1871. 9. 19 전북 고부~1909. 8.

증산교의 창시자. 본관은 진주. 자는 사옥(士玉), 호는 증산(甑山).

출생과 배경

〈대순전경 大巡典經〉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 권씨는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어리가 내려와서 몸을 덮으니 온천하가 광명하여지는 꿈을 꾸고 나서 잉태했으며, 13개월 만에 그를 낳았다. 또 출산 때는 그의 아버지가 하늘에서 두 선녀가 내려와 산모를 간호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상한 향기가 온 집안에 그득하고 밝은 기운이 집을 둘러 하늘로 뻗쳐오르는 현상이 7일이나 계속되었다. 태어난 아기의 용모에는 위의(威儀)가 서려 있고 양미간에는 불표(佛表)가, 왼손바닥에는 별 무(戊)자가, 아래 입술에는 붉은 점이 있었다. 그는 몰락한 양반의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대단히 가난했다. 일찍이 학업을 중단하고 14, 15세 때 다른 지방으로 가서 머슴살이와 나무꾼 생활을 했다. 21세에 절름발이인 부인과 결혼하여 한동안 처남의 집에 서당을 차리고 훈장생활을 했다. 이당시 그의 학문은 높은 경지에 올라 한학은 물론 유·불·선의 여러 경전과 음향·풍수·복서·의술 등에 막힘이 없었다.

활동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농민군을 따라다녔으나 싸움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참여한 사람들에게 이 싸움은 실패할 것이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했다. 동학혁명이 끝난 후의 사회적 참상과 혼란을 목격한 그는 국가와 민족, 세계와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천지의 대도를 얻고자 결심했다. 이후 그는 1897년부터 3년간 세상의 실상을 알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이 기간에 충청남도 비인(庇人) 사람인 김경흔(金京)으로부터 증산교의 중요주문이 된 태을주(太乙呪)를 얻었으며, 연산(連山)에서는 김일부(金一夫)를 만나 주역(周易)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특히 김일부는 〈정역〉을 저술하여 조선 후기 신종교에 거의 예외없이 나타나는 후천개벽의 이론적 틀을 세운 사람인데, 그와의 만남은 강일순의 사상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증산은 이처럼 여러 종교의 교리에 몰두하는 한편 이보(耳報)와 영안(靈眼) 등 초능력을 배우기도 하고, 선후천(先後天)의 천기변화를 가늠하며 국제정세와 동서의 문화형태에 깊은 관심을 갖기도 했다. 이러한 구도기간중 그는 전혀 직업을 갖지 않고 방랑하며 이따금 기이한 능력을 보여 광인이나 기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

종교적 삶

그는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권능을 얻지 않고는 뜻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31세(1901) 때 전주 모악산 동편 대원사(大院寺)에 들어가 수개월 간 송주(頌呪)하며 기도와 이적을 행했다. 그러던 중 6월 선정(禪定)에 들어가 9일 만인 7월 5일 홀연 오룡광풍(五龍狂風)하는 가운데 탐음진치(貪淫瞋癡)의 사종마(四種魔)를 물리치고 광명혜식(光明慧識)이 열리며 천지의 현법(現法)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1909년 화천(化天)할 때까지 7년간 모악산을 중심으로 포교하며 여러 차례 천지공사를 수행했다. 천지공사라는 것은 구천상제(九天上帝)인 강일순이 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계와 신명계의 모든 원한들을 해원시키고 우주의 운행질서인 천지도수(天地度數)를 고쳐 후천선경의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강일순이 화천할 때까지 그를 따르던 종도(宗徒)는 최초의 종도인 김형렬(金亨烈)을 비롯하여 모두 64명이었다. 강일순은 1909년 자신의 화천을 미리 예언한 다음 미래에 다가올 괴병을 극복할 수 있는 비법인 의통(醫統)을 전한 후 8월에 화천했다. 이후 그는 교단의 창시자로서 뿐만 아니라 절대자 또는 상제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저서로 후천세계를 예언한 〈현무경 玄武經〉이 있다.→ 증산교

참고문헌

    강일순

  • 한국종교사상사 1 - 증산교·대종교·무교편 : 김홍철, 김상일 공저, 연세대학교, 1992
  • 개벽의 문을 열고 : 증산도 편집실, 대원출판사, 1991
  • 증산의 생애와 사상 : 증산사상연구회 편, 대순진리회 출판부, 1980
  • 증산종교사상 : 장병길, 한국종교문화연구소, 1976
  • 증산천사공사기 : 이상호, 상생사, 1926
  • 전봉준과 강증산의 사회사상 〈공동체문화〉 1 : 이태호, 공동체, 1984
  • 한국사상사에서 맥락에서 본 증산사상 〈증산사상연구〉 7 : 배종호, 증산사상연구회, 1981
  • 증산사상의 민족사적 위치 - 그의 민중의식적 측면 〈증산사상연구〉 7 : 이현희, 증산사상연구회, 1981
  • 수운·증산·소태산의 비교연구 - 몇 가지 특징적 관점을 중심으로 〈한국종교〉 6 : 김홍철,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81
  • 증산의 민족주체사상 〈증산사상연구〉 6 : 노길명, 증산사상연구회, 1980
  • 증산의 남녀평등사상 〈증산사상연구〉 6 : 박용옥, 증산사상연구회, 1980
  • 수운·증산·소태산의 유·불·선 삼교관 〈한국종교〉 4·5 : 김홍철,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80
  • 강증산의 종교사상 구조에 관한 연구 〈증산사상연구〉 2 : 장병길, 증산사상연구회, 1976

대순전경 (大巡典經)

증산교의 기본경전.

1929년 이상호(李祥昊)·이정립(李正立) 형제가 편찬했다. 이들은 구전되는 강일순(姜一淳)의 행적과 가르침을 수집해 1926년 〈증산천사공사기 甑山天師公事記〉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러나 이 책이 많은 오류가 있다고 판단되어 대폭 수정·보완하여 나온 것이 〈대순전경〉이다. 지금까지 8판을 거듭하면서 체제와 내용이 약간 달라졌다. 1979년에 나온 제8판을 기준으로 보면, 제1장은 '천사(天師)의 탄강(誕降)과 유소시대(幼少時代)'로서 증산의 출생설화와 가족배경, 유년기와 청년기의 성장과정, 동학운동과의 관련성 등이 서술되어 있다. 제2장은 '천사의 성도(成道)와 기행이적(奇行異蹟)'으로서 성도과정과 그가 행한 각종 이적 등이 묘사되고 있다. 제3장은 '문도(門徒)들의 추종과 훈회(訓誨)'로 초기 제자들의 입교동기와 가르침이 언급되어 있다. 제4장은 '천지공사'(天地公事)로서 증산교의 핵심이 되는 사상이 서술되어 있다. 증산이 천지운도(天地運度)를 고쳐 후천세계를 열어 인간과 신명을 구제했다는 내용이다. 제5장은 '개벽(開闢)과 선경(仙境)'으로서 앞으로 펼쳐질 지상선경의 모습과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일어날 사실들을 예언하고 있다. 제6장은 '법언'(法言)으로서 인존(人尊)·해원상생(解寃相生)·민족주체사상, 제7장은 '교범'(敎範)으로서 교단조직과 각종 주문 및 선교, 제8장은 '치병'(治病)으로서 각종 질병에 대한 치유내용, 제9장은 '화천'(化天)으로서 증산이 죽을 때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이상 총 13장 499절 249면으로 되어 있다. 증산의 행적과 사상에 대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고 간주하고 있으나, 현재 각 증산교 교단에서는 이를 기본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증산교 (甑山敎)

1902년 강일순(姜一淳:1871~ 1909)이 개창한 종교.

이 종교는 교조의 사후에 많은 분파가 생겨났는데, 일반적으로는 이 분파된 종단들을 통칭하여 창시자의 호를 따서 증산교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에 흠치교( 敎)라고도 했다.

증산교는 한말 개항기에 나타난 동학·대종교와 함께 이 땅에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한다는 후천개벽을 주장한 대표적인 자생적 종교의 하나이다. 또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문화, 특히 무속(巫俗)과 선도(仙道)를 계승·발전시켜 한국 민중의 개인적인 신앙의식을 민간 중심의 공동체 신앙으로 승화시켰다.

창시와 연혁

창시자 강일순은 몰락한 양반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윤택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한 후 처남집에서 훈장노릇을 했다고 한다. 갑오농민전쟁 때는 동학군을 따라다녔지만 전쟁의 실패를 예언하고 직접 전쟁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전쟁이 끝난 다음 3년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사회의 실상과 민중의 생활을 살핀 후 민심을 수습함에 있어 갑오농민전쟁과 같은 인간의 인위적인 힘이나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기성종교로서는 역부족임을 깨닫고, 1901년 전주 모악산에 들어가 도를 닦기 시작하여 그해 7월 5일 성도(成道)했다. 1902년부터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훈화활동(訓話活動)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고통 속에 있는 민중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땅·인간의 삼계대권(三界大權)을 가지고 이땅에 금산사 미륵불로 강림했다고 했다. 또 세상의 혼란을 괴질로 비유하고 자신이 세상의 모든 병을 대속했으나 오직 괴병만은 남겨두었다고 했는데, 예언과 병든 세상을 고치는 의통(醫統)을 세상구원의 수단으로 삼았다. 당시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천지개벽을 통한 지상선경(地上仙境)이 하루 빨리 도래되기를 바라고 있었으나 1909년 그가 죽자 그의 허망한 죽음을 보고 대부분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고 해산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2년 뒤 강일순의 아내였던 고부인(高夫人)이 갑자기 졸도한 후에 강일순과 비슷한 언행을 하게 되었다. 이에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은 강일순의 영(靈)이 고부인에게 강림했다 하여 다시 모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최초의 교단인 선도교(仙道敎:太乙敎)가 형성되었다. 이 교단의 교세가 확장되자 강일순의 추종자였고 고부인의 이종사촌 동생인 차경석(車京石)이 고부인과 신자들의 접촉을 차단하고 교권을 장악하여 교명을 보천교(普天敎)로 바꾸었다. 그러자 강일순의 추종자들은 그의 법통성을 부정하고 각자가 교통(敎統)을 받았다 하여 새로이 교단을 만들어 분리해 나갔다. 고부인의 태을교, 김형렬(金亨烈)의 미륵불교, 안내성(安乃成)의 증산대도교 등의 교단이 그것이다.

이러한 분열 가운데서도 당시에 급속한 성장을 한 것은 차경석의 보천교였다. 차경석은 교세가 늘자 1919년 전국적으로 60방주(方主)라는 교구를 두었으며, 수백만의 신도를 거느리게 되었다. 이에 차경석은 1921년 함양군 황석산(黃石山)에서 천자등극을 위한 천제(天祭)를 올렸으며, 당시 많은 이들이 차경석을 차천자(車天子)라고 불렀다. 그러자 조선총독부에서는 보천교 신자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해 교인을 체포하기 시작했고, 이같은 탄압이 계속되자 차경석은 친일행각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교단 내에서 심한 반발을 받게 되었고 보천교 혁신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때 일부 간부들이 이탈하여 서울대법사(大法社)·삼성교(三聖敎) 등 새 교단을 만들었다.

한편 보천교에서 분파된 교단 이외에 강일순 추종자의 교단에서도 순천교(順天敎)·태극도(太極道) 등 새로운 분파가 생겼다. 일제강점기에 증산교는 한때 100여 개에 달했으나 1938년 총독부의 유사종교 해체령이 내려진 이후 교단이 소멸되거나 대부분 지하로 잠적하고 말았다.

교리와 사상

각 종단의 교리와 해설에 강조점이 달라 약간의 차이는 나지만 공통적인 핵심은 천지공사(天地公事)이다. 천지공사란 선천(先天)의 낡은 천지(天地)를 뜯어고쳐 후천선경 세계를 열기 위한 천지개벽의 작업인데, 이러한 천지공사의 주재자(主宰者)가 바로 구천상제(九天上帝)인 강일순이다. 교리에 따르면 강일순은 천계의 대권(大權)을 주재하는 절대신으로 구천에 있다가 천계의 신성불보살(神聖佛菩薩)들이 모여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하소연함으로써 이 세상에 내려와 둘러보다가 조선땅에 이르렀고, 전라도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彌勒金像)에 임하여 30년을 보내면서 수운(水雲:崔濟愚)에게 천명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했으나, 수운이 인간세계를 구원할 참 빛을 얻지 못하므로 스스로 강림했으며, 그 자신이 직접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개벽을 하고 불로장생의 선경을 열어 고해에 빠진 중생을 구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삼계는 천지도수(天地度數) 또는 운도(運度)에 따라 운행되며, 이 운도는 음양상수(陰陽象數)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예정된 천지간의 변동의 원리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세계의 역사변동을 이 운도에 따라 현대 이전을 선천(先天)으로, 앞으로 전개될 세계를 후천(後天)으로 구분하고, 현대사회는 선천과 후천이 교체되는 시기, 즉 말세(末世)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역사변화의 원리는 이미 짜여진 운행법칙이라서 인간능력으로 조정될 수는 없고, 오직 삼계대권을 가지고 있는 강일순의 권능으로만 조정될 수 있다고 한다. 우선 현재는 선·후천 교역기인 말세의 시대이기 때문에 선천시대의 상극의 천계로 인해 그동안 누적된 신명계와 인간계의 원한과 살기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신명계와 인간계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인데 현대에는 신명계가 극도로 혼란되어 있어 인간계의 조정을 위해서는 신명계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기성종교들이 각 민족의 문명에 토대를 두었기 때문에 사회판도가 넓어진 오늘날에는 인간의 참 길을 열어주지 못한다고 하고, 따라서 천지공사는 이러한 현대사회의 근원적인 혼란을 해소하기 위한 인류구원사업이라고 주장한다.

천지공사는 목적에 따라 운도공사(運道公事)· 신도공사(神道空事)· 인도공사(人道空事)의 3가지로 분류된다. 운도공사는 천지간에 예정된 변동의 원리와 천지의 도수를 고치는 작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다시 말세의 운도를 조정하는 세운공사(世運公事), 각종 재액(災厄)을 제거함으로써 제세구민하는 액운공사(厄運公事), 각 종교의 진수를 모아 무극대도를 만드는 교운공사(敎運公事), 각 지방의 지운을 조정하는 지운공사(地運公事)가 있다. 신도공사는 원한을 품고 죽은 신명들의 원한을 제거해줌으로써 신명계의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신명의 원한을 제거하는 해원공사(解寃公事)와 신명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신명의 배치와 지방과 민족에 따라 이질성을 나타내는 신명을 통일시키는 통일신단구성이 포함된다. 인도공사에는 말세운도에 처해 있어 앞길을 찾지 못하는 인간에게 수련을 통하여 신명과 동화하는 신화도통(神化道通)과 후천시대 윤리도덕을 닦도록 하는 윤리적 이념이 제시된다. 신화도통의 방법으로 주문을 외우며 기도하고 수련하는 방법이 강조되며, 새로운 윤리관으로는 인존사상(人尊思想)과 해원상생사상(解寃相生思想)이 그 이념으로 제시되고 있다.

현대사회의 모든 재앙이 선천시대의 법리인 상극이치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원한 때문이므로 후천시대가 열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원한을 깨끗이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미 천지공사로 후천선경이 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더이상의 원한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해원상생의 이념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원한을 해소하는 데는 모든 원한의 시초인 최초 원한을 풀어줌으로써 그뒤로 쌓여온 모든 원한을 풀 수 있다는 원시반본사상(原始返本思想)을 제시했다. 또한 신이나 그밖에 어떤 사물보다도 인간이 가장 존엄한 존재라는 인존사상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후천시대의 하나의 특성으로 언급되고 있다. 인간은 지금까지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았던 신보다도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인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인간이 일을 꾸미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고 했는데, 후천에서는 하늘이 일을 꾸미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은 인간'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존사상 속에는 계급타파사상과 남녀평등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경전과 종교의식

경전으로 가장 먼저 출판된 것은 〈증산천사공사기 甑山天師公事記〉이다. 이 경전은 보천교 혁신계를 주도했던 이상호(李祥昊)가 보천교를 탈퇴한 후 강일순의 추종자들에게서 들은 강일순의 행적을 모아 1926년 간행한 책이다. 역시 이상호에 의해 저술된 경전인 〈대순전경 大巡典經〉은 〈증산천사공사기〉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1929년에 초판이 발간되었으며, 현재 9판에 이르고 있다. 8·15해방 이전까지는 대체로 〈대순전경〉이 두루 사용되었다. 그러나 해방 후 각 종단들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경전들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생화정경 生化正經〉(삼덕교, 1954)·〈중화경 中和經〉(미륵불교, 1955)·〈선도진경 宣道眞經〉(태극도, 1965)·〈증산대도전경 甑山大道典經〉(법종교, 1970)·〈전경 典經〉(대순진리회, 1970)·〈교전 敎典〉(보천교, 1981)·〈증산도성전 甑山道聖典〉(증산도중앙총무부, 1988) 등이다. 이들 경전은 대체로 〈대순전경〉을 토대로 하면서 자기 종단 창시자의 행적과 가르침을 아울러 수록하고 있다.

의식은 각 교파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천지공사에 관련된 것은 대체로 공통적이다. 증산교의 1차적인 신앙대상은 상제인 강일순이며, 그외에도 환인·환웅·단군 등 한국 시조신과 각 민족의 민족신, 공자·석가모니·예수 등과 같은 문명신, 모든 사람의 조상인 신령신(神靈神), 그리고 최제우, 마테오 리치, 진묵대사(震默大師) 등도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느 교파에서나 강일순이 천지공사를 행할 때 사용했다는 송주(誦呪)와 소부의식(燒符儀式:부적을 태우는 의식)을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송주는 수련 때와 치성드릴 때 행해지는데, 주문을 외우면 개안(開眼)이 되어 신명계와 인간계 모든 현상을 보게 되고, 과거와 미래의 일을 알게 된다고 한다. 주문에는 강일순이 구도생활에서 얻은 태을주(太乙呪), 동학의 시천주(侍天呪), 그리고 칠묵주(七墨呪)·오주(五呪)·진법주(眞法呪)·도통주(道通呪)·갱생주(更生呪)·개벽주(開闢呪) 등이 있다. 이들은 소부를 하면 귀신을 내쫓고 병을 낳게 하며 죽은 사람을 소생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현황

일제강점기에 한때 100여 개에 이르던 교단이 일제의 종교탄압에 의해 해산되기도 하고, 지하화되었다가 해방 이후 새로이 흥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통성을 주장하는 많은 증산교단이 발흥하여 난맥을 이루었으며, 일부에서는 교단통합운동을 펴기도 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해방 이후 이들은 증산교단통정원·증산대도회·동도교·증산종단친목회·증산종단협회·증산종단연합회 등의 이름으로 여러 차례 연합조직을 형성했으나 교파 통일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1950년 후반에는 태극도에 의해 주도된 말세론적 신앙이 사회의 비난을 받았고, 1960년대에는 자체 정비와 도태과정을 겪는 한편, 이상호·이정립 형제에 의하여 경전 발행작업이 진행되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 증산사상연구회가 주도하여 1975년부터 〈증산사상연구〉를 발간하기 시작했고, 1974년 증산도장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50여 개의 교단이 난립되어 있고 주요교단으로는 증산교본부·태극도·대순진리회·증산진법회·증산도 등이 있다. 현재 증산교로서 최대 종단인 대순진리회는 1972년부터 종단 3대기본사업을 포덕·교화·수도로 정하고, 주요사업으로 구호자선·사회복지·교육사업 등을 확대하고 있다. 1988년 12월 현재 1,515개소의 교당과 1만 2,847명의 교직자, 120여 만 명의 교인이 있다.

  • 참고문헌 (증산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