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생장기

法號는 無染으로 圓覺祖師에게 十世孫이 되며 俗性이 金氏고 武烈大王이 八代祖가 된다. 할아버지 周川은 品(骨品)이 眞骨이고 地位(官等)는 韓粲이었으며 高祖와 曾祖가 모두 將帥와 宰相稷에 드나든 것을 집집마다 알고 있다. 아버지 範淸의 代에 一族이 眞骨로부터 一等級 降等되어 '難得'〔六頭品〕이라고 했는데 〔나라에 五品이 있는데 聖骨·眞骨·難得(六頭品.難得은 얻기 어려운 貴姓이라는 뜻, 陸機의 文賦에 求易而得難이란 말이 있음) 그리고 五頭品·四頭品이다. 數字가 많을수록 貴한 것이니 一命에서 九命으로 올라갈수록 높은 것과 같이 六頭品은 五頭品·四頭品보다 높은 것이다. 五頭品·四頭品은 족히 말할 거이 못된다.〕 그는 晩年에 趙나라 文王의 일을 본받았다.

 어머니 華氏가 꿈 속에서 긴 팔을 지닌 天人이 내려와 연꽃을 주는 것을 보고 이로 인하여 姙娠을 했다. 얼마 지났을 때 거듭 꿈에서 西域의 道人이 스스로 法藏이라 칭하면서 十護戒를 주어 胎敎에 充當하게 했으며, 1周年을 넘겨 大師를 낳았다.

 阿孩〔方言에 '아이'를이르는 말, 우리말이 중국말과 다름이 없다.〕 적에 걷거나 앉을 때 반드시 손을 合掌하고 跏趺를 하여 마주 앉았으며, 여러 아이들과 노는 데 이르러서는 벽에 그림을 그리고 모래를 모으는 데도 반드시 佛像과 佛塔의 모양으로 하였다. 그러면서 차마 하루도 부모 슬하를 떠나지 못하였다. 아홉 살에 비로소 學堂에서 글공부를 하였는데 눈으로 본 것을 입으로 반드시 외우니 사람들이 '海東神童'이라고 일컬었다.

 열두 살을 넘기면서 九流를 좁게 여기는 뜻이 있어서, 佛道에 들어가기 위해, 먼저 어머니께 사뢰니 어머니는 이전의 꿈을 생각하고는 울면서 "그렇게 해라"고 말씀하였고, 뒤에 아버지께 아뢰니 아버지는 이미 늦게 깨달은 것을 후회하고 흔쾌히 "좋다"고 하였다.

 드디어 雪山 五色石寺에서 머리를 깎고 僧服을 입고서, 입으로는 藥을 맛보는 데(經義의  耽味) 精密했고 힘으로는 하늘을 기울〔補天〕만큼 날래었다. 法性禪師란 분이 있었는데 일찍이 중국에서 x伽門(小乘法)을 두드린 분이다. 大師께서 스승을 섬긴 지 수년에 探索하여 조금도 남긴이 없자, 法性禪師가 감탄하여,

  빠른 발로 달리면 뒤에 떠나더라도 앞서 도착한다는 것을 나는 그대에게서 體驗했노라. 나는 만족한다. 내가 그대에게 가히 남은 용기를 과시할 것이 없으니 그대와 같은 사람은 마땅히 中國으로 가야한다.

고 말하니, 大師께서 "예"라고 했다.

 밤중에 새끼줄은 (뱀으로) 眩惑되기 쉽고 공중의 (가느다란) 실은 區分하기가 어려우며, 물고기는 나무에 올라서 가히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토끼는 그루터기를 지켜서 가히 기다릴 수 잇는 것이 아니다. 그러 까닭에 스승이 가르쳐 준 것과 자기가 깨달은 것에는 서로 보탬이 되는 것이 있다. 진실로 구슬과 불 이것이 (수중에) 들어 온다면 조개와 부싯돌은 가히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무릇 도에 뜻을 둔 사람에게 어찌 일정한 스승〔尙師〕이 있으리요.

 이윽고 옮겨 가서 浮石山 釋燈大德에게 華嚴〔驃訶健拏〕을 물었다. 하루에 서른 사람의 몫에 필적하니 釋燈大德〔藍천〕이 얼굴빛을 변하며, 요堂과 盃水의 비유를 들어 말하기를,

  동쪽으로 낯을 돌려 바라보면 서쪽의 담을 보지 못한다. 저쪽 언덕(中國)이 멀지 않은데 어찌 반드시 故土(新羅)만을 생각하리요.

 라고 하였다. (大師는) 문득 산에서 나와 바다를 따라서 서쪽으로 해를 타고 갈 기회〔西泛〕를 엿보았다. 마침 國師가 瑞節을 가지고 天子의 宮闕〔象魏〕로 가거늘, 발을 의탁하여서쪽(中國)으로 향하였다. 大洋 가운데 이르러, 風濤가 갑자기 사납게 일어 큰 배가 사람들을 떨어뜨려 다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大師는 心友 道亮과 함께 외쪽 판자에 걸터 앉아 業風에 맡겼다. 밤낮으로 보름 정도를 漂流하다가 劍山島에 이르렀다. 무릎으로 기어 거친 언덕으로 가서 失意하여 한탄하며 한동안 있다가,

  물고기 배 속에서 다행히 몸을 빼내었고, 龍의 턱 아래에 거의 손을 들이밀었는는데, 나의 마음은 돌이 아니니 어찌 굴러서 물러나리요.

 라고 말하였다.

 長慶(821~824)初에 이르러 朝正使 王子 昕이 唐恩浦에 배를 대거늘, 함께 타고 가기를 청하여 허락받았다. 之부山 기슭에 도달한 뒤에 처음에 어려웠고 나중에 쉬웠던 것을 돌이켜 보고서는 海神에게 揖하며, "잘 있거라 고래 물결, 잘싸워라 바람의 악마여!"라고 말하였다.

 (그곳을) 떠나 가다가 大興城 南山의 至相寺에 이르러, 華嚴〔雜花〕을 說法하는 사람을 만나 浮石山에 있을 때와 같이 했다. 한 얼굴 검은 老人이 이끌어 말해 주기를, "멀리 事物에서 취하고자 하는 것보다 그대 마음 속의 부처를 認知하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하였는데, 大師는 言下〔舌底〕에 크게 깨달았다.

 이로부터 筆墨을 놓고 여러 곳을 다니다가 佛光寺에서 如滿에게 道를 물었다. 如滿은 江西의 印을 찼으며, 香山 白尙書 樂天과 空門(佛門)의 벗이 되는 사람인데 應對를 하다가 부끄러운 빛을 띠며,

  내가 사람 겪기를 많이 하였으나, 이 新羅 젊은이와 같은 이는 거의 없었다. 뒷 날에 中國이 禪을 잃으면 장차 東夷에게서 그것을 물어야 할 것인가.

 라고 말하였다.

 麻谷 寶徹和尙을 가서 뵙고, 일을 근면하게 하여 가리는 것이 없으며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일을 자기는 반드시 쉽게 하니, 여러 사람들〔衆目〕이 말하기를, "禪門의 庾黔婁와 같은 異行이다"라고 하였다. 徹公이 (大師의) 苦節을 어질게 여겨, 일찍이 하루는 일러 말했다.

  옛날에 나의 스승이신 馬和尙께서 나에게 遺言하기를, "봄꽃이 繁盛하고 가을의 열매가 적은 것은 菩提樹〔道樹〕를 오르는 사람이 슬퍼하고 탄식하는 바이다. 이제 너에게 印을 줄 것이니 뒷날에 배우는 무리들 가운데 奇異한 功이 있어 가히 封할 만한 자가 나타나거든 封하여서 (印이) 뭉크러지게 하지 말라"라고 하였으며, 다시 이르기를, "(佛法이) 東쪽으로 흐른다는 이야기는 대개 豫言〔鉤讖〕에서 나온 것인즉, 저 해뜨는 곳(新羅) 善男子의 根本이 거의 成熟되었을 것이다. 만약 네가 東方의 사람을 얻어서 가히 目語할 자가 있거든 잘 이끌어라〔견導之〕. 惠水가 바다 귀퉁이(新羅)에 널리 젖어들게 하면 德이 얕지 않으리라"라고 하였는데,스승의 말씀이 귀에 남아 있다. 나는 네가 온 것을 기뻐하며, 이제 印을 주어 東土에서 禪侯의 으뜸이 되게 하리니 가서 정성껏 할지어다. 그러면 나는 지난날 江西의 大兒요, 後世에 海東의 大父가 되는 것이니, 先師에게 부끄러움이 없게 되리라.

  얼마 안 있어 스승(寶徹和尙)이 돌아 가시매 墨巾을 머리에 썼다. 이에 말하기를, "大船이 이미 버려졌는데 小舟가 어찌 매여 있으리요"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바람부는 대로 遊浪을 하였는데, 氣勢를 가히 막을 수가 없었고, 뜻을 가히 빼앗을 수가 없었다. 이에 汾水를 건너고 곽산(곽山)을 오르며, 古跡이라면 반드시 찾아 보고 眞僧이라면 반드시 나아겼다. 무릇 그가 머무는 곳은 人家〔人煙〕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 대개 그 위태함을 편안하게 여기고 그 괴로움을 달게 여기며, 四體를 수고로이 하기를 奴虜같이 하고, 一心을 받들기를 君主처럼하는데 뜻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위독한 痼疾病者를 돌보고 孤獨한 자를 救恤하는 일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으며, 큰 추위와 지독한 더위가 오고, 또한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나거나 혹은 손발에 凍傷이 드는 경우에도 일찍이 게으른 모습을 하지 않았다. 名聲을 들은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멀리서 禮를 갖추게 되고 떠들썩하게 東邦의 大菩薩이라고 하였는데, 그 三十여년 행한 일이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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