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임종기

이미 장사를 치르고 헌강대왕이 익실에 거처할 때에 울면서 왕손 원영에게 명하여(대사에게) 뜻을 알리어 말했다.

  내가 어려서 부상을 당하여 정치를 잘 알지  못하지만,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고 부처를 받들어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것과 오직 그 몸만을 잘 다스리는 것과는 같이 말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대사는 멀리 가지 마십시오. 거하실 곳은 선택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대사가) 대답하기를,

  옛 스승으로는 육적이 있고, 오늘날의 보필로는  삼경이있습니다. 늙은 산승이 무엇하는 자인데, 앉아서 계수같은 땔나무와 옥같은 쌀밥〔계옥〕을 좀먹고 있겠습니까. 다만 세 글자로써 남겨 드릴 것이 있으니, '능관인(능히 사람을 잘 골라서 벼슬을 주는 것)' 그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튿날 산장을 이끌고 새처럼 떠나갔는데, 이로부터 역마의 왕래와 문문으로 그림자가 바위 계곡에 이어졌다. 역졸들은 가는 곳이 성주사라는 것을 알면, 곧 모두 뛸 듯이 기버하여 손을 모으고 말고삐를 고쳐잡고는 왕명을받고 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지체도리 것을 염려하여 지척의 거리와 같이 달렸다. 이로 말미암아 기상시들은 급한 교시를 받아도 쉽게 거행할 수 있게 되었다.

 건부제가 헌강대왕의 즉위를 승인하는 사절을 보내온 해(878)에 국내의 유식자들 중 가히 말할 만한 사람들로 하여금'흥이제해'의계책을 바치게 하는 한편, 별도로 우리 나라의 종이를 사용하여 대사에게 편지를 내리면서 '당나라의 후의'를 입은 것이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 잇달아 나라에 보탬이 될 일을 물어 왔다. 대사는 하상지가 송문제에게 유언〔헌잠〕했던 말을 인용하여 대답했다. 태부왕이 살펴보고 아우인남궁상(남북상 중의 하나인 남상)에게 일러 말했다.

  삼외는 삼귀에 견줄 수 있고 오상은 오계와 같다. 능히 왕도를 실천하면 이는 곧 불심에 부합하는 것이니 대사의 말씀이 지극하다. 나와 너는마땅히일념으로 받들어 행해야한다.

  중화 원년(881) 건부제가 서쪽으로 피난(황소의 난)갔던 해 가을에, 임금이 측근인에게 일러 말하기를, "나라에 큰 보주가 있는데, 평생토록 독 속에 감추어 둔다면 그것이 옳겠는가"라고 하니, (측근인이) 말하기를, "옳지 않습니다. 때때로 한번 나오게 하여 만백성의 눈을 뜨게 하고 서방 이웃들의 마음을 취하도록 쏠리게 함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나에게는, '말니'라는상품의 보배가 있는데, 빛을 감추고 숭엄산에 있다. 만약 비밀의 광을 연다면 마땅히 삼천세계를 비추어 환하게 할 것이니 심이승을 비추는 위문후의 구슬 따위야 어찌 족히 말할 것이 있겠는가. 우리 경문왕께서 간절하게 맞이하여 일찍이 두 번 나타난 바 있다. 옛날에 찬후(숙하)는 한왕(한고조)이 대장을 임명할 때 어린 아이 부르듯 한 것을 희롱했는데, 능히 상산의 네 노인(사곡)을 초청해 오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제 듣건대, 천자가 피란을 갔다 하니, 달려가서 천자의 여러 신하들〔관수〕을 위문하도록 재촉할 작정인데, 피난간 천자를 근왕하는 데에 정성을 더하려면 부처에 귀의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이라.장차 대사를 맞이하여 반드시 여론〔외의〕에부응하려는 것이지,내가 어찌 감히 그 하나(임금의 벼슬)를 빙자하여 그 둘(년치와 덕망)을 업수히여김이랴.

라고 하고, 이에 그 사자를 정중히 하고 그 말씀을 낮추어 대사를 부르시니, 대사가 말하기를,

  외로운 구름이 산에서 나오는 것이 어찌 무슨 마음이 있어서리요. 대왕의 풍에 인연이 있는 것이니,'고집함이없는 것'이 곧 상사의 도리이리라.

라고 하고는,드디어 와서 알현하였다. (임금이) 선조의 예와 간이 대해 주었으되, 예를 더한 것으로 명백히 손가락을 꼽을 수 있는 것으로는, 마주 보고 음식을 베푼 것이 첫째요, 손수 향을 전한 것이 둘째요, 삼례를 세 번한 것이 셋째요, 곡미로를 잡고 세세생생으 인연을 맺은 것이 넷째요, 법호를 더하여 '광종'이라고 한 것이 다섯째요, 이튿날 일반 벼슬아치들〔진경〕에게 명하여대사의 숙소〔봉수〕로 쫓아가 기러기처럼 열을 지어 가례토록ㅎ나 것이 여섯"째요, 국중에 육의를 연마하는 자(시가를 지을 수 있는 자)를 명하여송별의 노래를 짓게 하니, 재가제자로서 왕손인 소판 의영이머저 창을 하여 거두어 두루마리를 만들고, 시청이며 한림의 재자인 박X이 인을 지어서 떠날 때 증정한 것이 일곱째요, 거듭 장차에게 명하여 정결한 방을 베풀어 작별을 요구한 것이 여덟째라.

 고별에 임하여묘결을 구하니 이에 종자에게 눈짓하여 진요를 들어 말하게 하였는데, 순예 원장 허원 현영과 같은 네 사람의 스님 중에 청정함을 얻은 자가 잇어, 그 지혜를 실 뽑듯이 하고 그 종지를 세밀히 표출하여, 뜻을 기우려 태만함이 없었고 (임금의) 마음에 젖음이 흠뻑하게 하니, 임금이 매우 기뻐하여 두 손을 모아 절하며,

  지난날 선고께서는 증참〔사금지현〕과 같은 위치에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증삼〔피서지자〕의처지가 되었구나.(증참 증참부자가 다같이 공자으 L제자가 되었듯이 경문왕과 헌강왕이 다같이대사으 L제자가 되었음을 비유함) 뒤를 이어서 공동의 가르침으 얻었고 가슴에 간직하여 혼돈의 根源을 열었도다. 그런즉, 저 위수 가의 노옹(강태공)은 진실로 명예를낚은 자이며 사상의 유자(장랑)도 대개 (노옹의) 자취를 밟은 것으로, 비록 왕자의 스승이 되었으나 한 것 세치의 혀〔삼촌설〕를 희롱했을 뿐이니, 어찌 나의 스승의 말과 같이 일편심을 은밀히 전하였겠는가. 받들어 행하여 감히 실대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태부왕은 본래중화의 글을 잘하여 금옥같은 그 음성으로 뭇사람의 시끄럽게 떠드는 것과 관계치 않고 능히 입을 열면 四六騈儷의 語句를 이루어서 평소에 미리 구성해 놓은 것과 같았다.

 대사는 다 마치고 물러나와 또한 왕손 소판 금일의 초청에 응하여 몇차례 말을 나누고 곧 감탄하여,

  옛날에 임금들 중에는원예(멀고도 장엄한체도)는 있으면서 원신(멀리내다 볼 줄 아는 신지)이 없는 자가 있는데,우리임금은 (둘 다) 갖추었고, 옛날에 신하들 중에는 공재는 있으면서 공망이없는 자가 있는데, 그대는 (둘 다) 온전히 가졌으니, 나라가 잘 되어 나갈 것이오, 마땅히덕을 좋아하고 스스로를 아끼시오.

라고 말했다. (山으로)돌아감에 모든 것을 사절했다. 이에 (임금이) 사자〔유軒〕를 보내어 방생장의 경계를 표시하니 곧 조수가 기뻐하였고, 어필을 들어 성주상의 제액을 쓰니 곧 용사가 살아 있는 듯하였다. 성사가 끝나자 좋은 시절이어느듯 다하였다.(헌강왕이 승하함)정강대왕이 왕위에 오르매 양조의 은총에 넘친 대우를 좇아서 그대로 행하였다. 승려와 속인을 거듭 사자로 하여 대사를 맞아드리게 하였으나, (대사는)늙고 병들었다 하여 사양하였다.

 태위대왕께서 나라에 선정을 베풀게 되면서 높은 산처럼 (대사의) 덕을 우러러 보아, (임금의) 자리를 이른 지 석달에 말을 달려 안부를 묻게 한 것이 열 차례나 되었다. 얼마되지 않아서(대사가) 요통으로  고생한다는 말을 듣고 즉시 국의에게 명하여 가서 치료하도록 하였다. (국의가 대사에게) 이르러서 아픈 상태를 물으니 대사가 엷게 웃으며, "노병일 뿐이니 치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미음 두끼를 반드시 종소리를 들은 뒤에 내어오라고 하였다. 그 문도는식력이 떨어질까 염려하여종채를 맡은 사람에게 몰래 고하여 거짓으로 자주 치게 하였더니, (대사는) 바라지문 쪽으로 눈짓을 하며 미음상을 거두라고 명하였다.

 장차 돌아가시려 할 때는 곁에서 시중드는 이에게 명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유훈을 일깨우라고 하며,

  이미80〔中壽〕을 넘어 죽음〔大期〕을 피하기 어렵다. 나는 멀리 떠나니 너희들은 잘 있거라. 講하기를 한결같이 하며 지켜서 잃어버리지 말도록 하라. 옛 관리도 오히려 이와 같이 하였으니 오늘날의 禪僧은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遺言의 말이 겨우 끝나자 그대로 돌아가셨다.

 大師는 性品이 恭遜하고 敬虔하며 말씀이 和氣를 상하게 하지 않았으니 《禮記》에 이른 바, "몸은 謙遜한 듯하며 말은 나직하고 느린 듯하였다"는 것일진저!

 學僧들을 반드시 禪師로 대우하였으며 賓客을 接할 때 일찍이 (身分의) 높고 낮음에  따라 恭敬함을 달리 하지 않았다. 까닭에 방에는 慈悲가 가득 넘쳤고 ant 무리들이 기뻐하며 따랐다. 닷새를 주기로 하여 배움을 구하러 온 사람들에게 의심난 것을 묻도록 하였고, 生徒들을 타일를 때에 말하기를,

  마음이 비록 몸의 主宰이기는 하지만 몸은 마땅히 마음의 스승이 되어야 한다. 너희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걱정이지 道가 어찌 너희에게서 멀리 있겠느냐. 설령 農夫라 하더라도 능히 俗世의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달리면 곧 마음도 달릴 것이다. 道師 敎父가따로 種子가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 또 말하기를,

  저 사람이 마신 것이 나의 渴症을 해소하지 못하며 저 사람이 먹은 것이 나의 배고픔을 구하지 못하는데 어찌 힘써 자기 스스로 마시고 자기 스스로 먹지 않겠는가. 或者가 敎宗과 禪宗을 일러 같은 것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그 宗旨의 다름을 보지 못하였고, 말이 본래 많지만 내가 아는 바 아니다. 대략 같아도 許與하지 않고 달라도 비난하지 않으며 조용히 앉아서 機心을 삭하는 것, 이것이 一般僧에 가까운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 말은 明白하면서 道理에 맞고 뜻은 奧妙하면서 信實한 까닭에 능히 尋相을 無相을 삼아, 道를 닦는 사람으로 勤勉하게 행하게 하여 갈림길 속에 갈림길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장년에서부터 노년에 이르도록 스스로 낮추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식사는 糧食을 달리하지 않았고 옷은 반드시 均一하게 입었다. 무릇 짓거나 수리할 경우에는 수고로움이 뭇 사람보다 앞섰는데, 매양 말하기를, 祖師(迦葉祖師)께서도 일찍이 진흙을 이기셨거늘 내 어찌 잠시라도 편안히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며, 물을 나르고 땔나무를 지는 일에 이르러서도 혹 몸소 친히 하였다. 또 말하기를, "山이 나를 위하여 더럽혀졌는데 내가 어찌 몸을 편안히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자기를 다스리고 사물에 힘씀이 모두 이와 같았다. 大師는 어려서 儒家의 책을 읽어서 남은 맛이 입술에 젖어 있었으므로 應答할 때에 韻語를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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